누군가에게 책을 빌려주거나 책을 추천하고 “그 책 읽어봤어? 어땠어?"라든지 “그 책 재밌지?” 하는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다. 내가 읽은 책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다. 이것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같은 생각을 품을 것이다. 그래서 종종 주변에 책을 읽을 것을 권하고 책을 빌려주기도 하고 내가 읽었던 책 중에 좋은 책이 있으면 추천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읽고 느낀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해한다. 사실 이것은 답을 정해 놓고 기대하는 행위이다. 상대방도 그 책이 좋았다며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책이라는 것도 개인의 취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책을 의무감에 읽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에게 독서에 대해 조언을 구하거나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 온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니 성심성의껏 도와줄 것이다.
이번에 시집을 출간하고 시집을 구매한 주변에 지인들이나 가족들에게 시집 읽어봤냐고 어땠냐고 묻지 않았다. 선물한 사람들에게도 시집은 잘 읽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잘 읽고 정말 마음에 닿는 시가 있었다면 자연히 이야기해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시집을 읽고 마음에 들었던 시를 공유해 주고 피드백을 주었던 분들에게 감사하다. 그것은 내게 주는 마음이자 다정함이니까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입이 근질거려서 묻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부모님이랑 동생.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진 나의 가족들의 평가가 왠지 찐일 것 같은 생각에서인지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인지 궁금하다. 그 인정 욕구가 어디서부터 발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의 관심에 목마른 사람인 것 같다. 그만큼 애착을 가지고 살았으니까 애착 대상으로부터의 공감이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도 시집을 읽어 보았는지 어떤 시가 좋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읽음과 읽지 않음은 그들의 자유이니까.
그럼에도 기뻤던 것은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아빠와 엄마의 반응이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족 간에도 이런 것은 돈 주고 봐야 하는 것이라며 2만 원을 건네며 시집을 사주었고 나의 시가 실린 부분의 40편을 다 읽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살면서 돈 주고 산 첫 책은 나의 시집이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는 엄마가 딸의 시집이라고 다 읽어 준 것에 감동했다. 시는 다 읽었지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 한바탕 웃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시는 난해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을 읽는 나도 시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데 오죽하겠는가. 그런 엄마에게 “엄마, 시인이 집에 있는데 이해가 안 가면 직접 물어보면 되지. 다 이야기해 줄게” 하고 말했다. 아빠는 내가 선물한 시집을 책꽂이에 꽂아 두었는데 거꾸로 꽂아 두었다. 내내 거꾸로 꽂혀 있었다. 볼 때마다 거꾸로 꽂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집이 바로 꽂혀 있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아빠, 시집 읽었네?”라고 물었고 아빠는 “안 읽었는데”라고 말했다. “아닌데 아닌데 시집 계속 거꾸로 꽂혀 있었는데 지금 바로 꽂혀 있잖아”라며 아빠를 놀렸다. 츤데레 아빠는 같이 배시시 웃으며 “청소하다가 바로 꽂았다는 생각은 안 하냐”라고 말했다. 이것은 장난기 많은 아빠와 나의 티키타카이다. 아빠는 시집을 다 읽지는 않았어도 분명 펼쳐서 읽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오랫동안 독서를 해보니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존재하고 분야도 다양하며 나에게도 독서 취향이라는 게 생겨서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나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마음만이 가득했을 때에는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하고 책만 보면 무조건 읽고 보던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하고 책만 보면 많은 욕심을 부리지만 이제는 취향이라는 것이 있으니 내가 원하는 책을 선별할 능력을 갖춘 게 된다. 나에게 필요한 그리고 나에게 맞는 책을 잘 고르는 것도 독서력이라고 생각한다. 읽었는데 눈에 안 들어오는 책도 있고 나의 결과 맞지 않는 글도 있기에 그런 책들은 읽으려고 애쓰기보다는 과감히 덮고 다른 책을 찾아야 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을 잘 선별하여 읽어야 한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붙들고 씨름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그럴 시간에 다른 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취향이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누군가 나에게 독서 취향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어 주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당연한 거고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은 독서를 하는 사람인가요?라는 말은 패스해도 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독서인으로 봐주고 나의 독서 취향에 대해 물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날을 위해 대답을 준비해 둬야겠다. 갑자기 물어 오면 어버버 거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독서 취향이라고 해서 어떤 장르만을 편식하듯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으며 궁금한 것은 알아내야 하는 성미를 가지고 있어 어떠한 관심사가 생기면 그 책을 읽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취향이라 하면 나의 감성을 자극하며 사색과 성찰을 할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통해 배움을 얻고 사색을 하고 성찰할 수 있는 책.
자신의 취향을 안다는 것은 자신만의 고유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취향이 없거나 알지 못하면 어디 가서든 “아무거나”라는 말로 퉁치게 된다. 취향이라는 것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게 된다. 그 경험에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나의 것과 맞는 것을 찾고 찾는 것이니 취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들여진 것인가. 그러니 취향이 분명한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것을 찾기 위해 끝없이 노력을 기울인 매력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맞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참 많다. 소소한 것에서도 기분 좋음을 잘 느끼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서 “좋아 또는 좋아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카페에 좋아하는 자리에 좋아하는 메뉴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드라마, 영화, 책을 주기적으로 다시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은 한 곡 반복 듣기로 하루 종일 듣기도 한다. 어떤 색깔이 좋아서 꽂히면 그 색상이 기준이 되어 물건을 산다. 최근 몇 년간 내가 좋아하는 색상은 연보라이다. 연보라 덕후. 다양한 색깔을 좋아하지만 지금의 1순위는 연보라이다. 길가에 핀 민들레와 잡초라고 불리는 이름 모를 풀잎들을 좋아해서 시선이 자연히 머문다.
좋아하는 음식이 생기면 자주 먹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타인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공유한 그 장소를 그 누군가와 이별하게 되었을 때 장소마저 이별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은 전남친과 자주 가던 곳이었다. 전남친과 헤어지고 그 카페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 전남친도 그 카페를 좋아했고 그곳에서 왠지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곳에서의 함께한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마음에서 미련이 남지 않았는데 그곳에 가면 자동으로 그 사람이 생각나니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곳에 가면 기억이 떠오른다. 그 기억의 잔상은 장소와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예전 같으면 내가 좋아하는 맛집, 카페 등에 지인들과 공유하며 다녔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시절 인연처럼 장소도 시절 장소가 될 것 같아서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나만의 장소로 남겨두고 싶다. 오래오래 가고 싶으니까. 사실 현재는 사람과의 교류를 끊고 은둔이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지만 앞으로 그럴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하여 이렇게 정하여 둔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나만의 장소로만 남겨두기.
좋아하는 장소를 누군가와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다른 사람을 데려가서 새로운 기억과 추억으로 덮는 것이다. 그러면 조금씩 뒤섞여서 흐릿해지고 새로 업데이트된 기억이 또렷해지기 때문에 다시 그 장소를 갈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나만의 고유함에 꽂혀 있어서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이것도 이내 못 참고 근질거려서 좋았던 것을 공유하고야 말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그다지 관심은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할 것이란 것은 굉장한 착각이다. 그래서 가끔 취향과 느끼는 감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가 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건 인생에 행운 같은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는 하지만 권고하지는 않을 생각이고 상대의 취향을 존중할 것이다. 나의 취향이 존중받기를 원하듯 타인의 취향도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