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있는 사람

by 별하열음

세탁기에 두툼한 겨울용 이불 하나를 넣고 돌리려고 하는데 조금 여유가 있는 것 같아서 빨래 바구니에 있는 빨래를 세탁기에 들어갈 만큼 가득 넣었다. 우리 집 세탁기는 통돌이 세탁기이다. 예전부터 통돌이 세탁기를 써왔기 때문에 그냥 통돌이를 쓰는 것도 있고 나는 드럼 세탁기보다는 통돌이 세탁기를 좋아한다. 통돌이의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는 생활공간에 생기가 돌게 한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으니까 굳이 내가 빨래를 하고 있지 않아도 무엇인가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세탁기 안에 물이 차고 특유의 위이잉 하는 소리는 내며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비틀듯이 통이 돌아간다. 나는 그 광경을 세탁기 덮개에 투명한 창으로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안에서 빨래가 돌아가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좋다. 마치 자세히 보아야 하는 것처럼 관자놀이에 양손을 가리개로 하고 안을 들여다본다.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은 단순하다. 그래서 주변을 정돈하고 비우며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같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뭐라고, 좌로 우로 돌아가고 있는 빨래가 뭐라고 기분이 좋아지고 평온해진다는 말인가.

한참 이불 빨래가 돌아가다가 덜컹덜컹거리면서 뭔가 폭발할 것처럼 우당탕탕 거린다. 그냥 두면 곧 고장 나거나 정말로 무엇인가 폭발할 것 같아서 세탁기를 정지하고 빨래를 살펴본다. 가끔 빨래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균형이 안 맞아서 탈수 돌아갈 때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이불을 꺼내고 아래 깔린 빨래를 고르게 놓아주고 이불을 다시 넣는다. 균형이 맞았는지 다시 잘 돌아간다. 그리고 조금 뒤 또 탈수 타임이 돌아오자 우당탕탕 덜컹덜컹 거린다. 귀찮지만 다시 일어나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세 번을 했다. 그리고서 깨달은 것이 있다. 여백과 비움. 이불 하나면 충분했는데 가득 차게 이것저것 세탁물을 같이 넣었더니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탈이 난 것. 과욕은 늘 화를 부른다. 이만큼이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삶에서 만족이라는 것도 얻을 수 있고 여백의 미를 통해 숨을 고루 쉴 수도 있는 것이니까. 다음에는 이불만 넣기로 다짐과 반성을 한다.

나는 일명 보부상이다. 보부상은 평소 외출할 때 소지품을 많이 들고 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보부상 중에서도 파워 보부상이다. 언제부터 보부상이 되었는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타고나기를 보부상 기질로 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때도 공부도 안 할 거면서 교과서를 학교 사물함에다가 넣어 두지 않고 책가방에 넣어 다녔고 한창 멋 부릴 20대에는 화장품 파우치를 2개나 가방에 넣어 다녔는데 하나는 수정용 화장품 또 하나는 립 제품에 20개 정도 들어 있는 립 파우치였다. 립이 20개씩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기분에 따라 바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립 제품을 애지중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나의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그것의 10분의 1만 들고 다니지만. 큰 가방에 그 두 개의 파우치만 들어 있었겠는가 책, 다이어리, 지갑 그 외 소지품들도 들어 있었다. 예전에 직장에서 만난 동생이 나를 처음 봤을 때 신세계였다고 했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난다. 꼬박꼬박 풀 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는 것도 신기한데 가방 안에 파우치도 두 개나 가지고 다니고 이 언니 뭐지? 했나 보다. 친해지고 나서는 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 동생도 화장품 파우치가 생겼고 나처럼은 아니지만 화장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화장품 파우치가 없으면 핸드폰이 손에 없는 것처럼 불안하다. 파우치 안에 담긴 물건들을 쓰느냐 안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기자기하게 챙겨 넣은 혹시 모를 일들을 대비해서 마련해 둔 파우치가 가방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그 파우치가 귀염뽀짝한 것이면 기분이 좋다.


요즘은 보부상력이 더 상승해서 가방이 터질 것 같다. 왜 그렇게 필요한 게 많고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최근에 금요일마다 카페 데이를 정해서 좋아하는 카페에 마실을 간다. 가서 책도 읽고 싶고 필사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다이어리도 쓰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가방에 하나하나 넣다 보면 들어갈 자리가 없는 동시에 점점 무거워진다. 일단 가방을 들어본다. 어우! 이거 너무 무거운데 하며 가방을 내려놓고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물건을 뺐다 넣었다를 반복한다. 물건을 뺄 때마다 아쉬움이 들지만 다음 기회에.... 그렇게 물건을 뺐다고 해서 가뿐한 가방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어냈으니까 가방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게 외출을 한다. 가방이 무거워서 양쪽 팔로 번갈아가며 들고 다니면서 그리고 길 가다가 횡단보도 빨간불을 만나면 냅다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보부상의 생활을 반복한다. 어쩌면 보부상은 나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이 힘든 고행을 거쳐서라도 보부상이고 싶은 마음이 숙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맥시멈 리스트이고 보부상이며 생각도 많은 아직은 덜 단순해진 나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살면서 덜어냄과 비움의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주기적으로 나의 삶을 정돈하고 단순해지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10여 년 전 정말 극도로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박했던 때가 있었다. 삶이 무질서했고 내면이 정돈되지 않아 많은 것들이 뒤엉켜서 벅찬 나를 어쩌지 못할 때였다. 그때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만났다. 그 책을 시작으로 단순함과 미니멀에 관련된 책을 줄곧 읽고 실천을 했다. 그로 인해 내 인생에서 무엇을 남겨 두고 버려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쓸데없는 것들로부터의 첫 해방을 누린 셈이었다. 한동안은 나름 미니멀하고 단순하게 살아봤기에 그 맛을 안다. 그것이 내게 주는 해방감도 함께. 그래서 나의 내면이 복잡하고 삶의 질서가 무너진 것 같다고 생각하면 주변을 정돈하고 단순화하려고 노력한다. 삶을 꽉 꽉 채우며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의식적으로 내 삶을 돌아보고 정돈하고 비워서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틈이 있어야 공기가 들어 숨도 쉴 수 있고 빛이 들어 삶이 따스해질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완벽함을 참 동경했는데, 그래서 흠이 없는 사람이고 싶었고 부단히 노력을 했었다. 그만큼 그 완벽이라는 신기루에 닿기 위해 애를 쓰고 나를 태워야 했다.


차츰 나이를 먹어가면서 완벽의 매력보다는 빈틈의 매력이 좋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졌고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사람들에게 비치는 모습을 많이 신경 쓰면서 살았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은둔이로 사는 지금은 그저 온전한 나로서 살아간다. 예쁘게 보일 필요도 없고 일을 잘하지 못해도 되고 사람들의 기준에 맞는 평범함에 맞추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 365일 중에 360일은 화장을 하고 살았던 내가 요즘은 크림과 립밤만 바르고 다닌다. 가끔 대외적인 일이 있을 때는 생기 부여를 위해 화장을 하지만 대다수는 자연인으로 산다. 거울을 보며 한껏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못생겼나 하고 중얼거리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자유이지 않을까. 자유도 어쩌면 행복처럼 일상에 흐드러져 있지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빈틈을 인정하면 많은 것들에 관대해진다. 잘 해내야지 하는 마음도 못해도 괜찮다고 다독이며 경험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고 실수하던 것들에도 자신을 채찍질하기보다는 헛웃음을 지으며 ’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잘하면 되지 ‘하고 넘겨 버린다. 나는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흠도 있고 빈구석도 많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나면 그렇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완벽하게 해내려는 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으며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최적 주의자임을 명시한다. 최선을 다했으면 충분하다고.


가끔은 빙구미와 초딩미를 내뿜는, 할머니가 되어도 17세 소녀처럼 살고 싶은 내가 좋다. 그냥 나 좋은 대로 사는 나에게 맞춰진 지금의 삶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좋다. 많이 배울 수 있고 깨닫는 재미를 지닌 틈을 가진 사람이라서 좋다. 삶 속에 여백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