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나는 동료와 함께 점집을 찾았다.
주말부부 3년 차, 혼자 아이를 키우며 더는 버틸 여유가 없던 시기였다.
“남편이랑 언제쯤 같이 살 수 있을까요?”
복채를 내고 나오는 길, 우리 표정은 비장했다.
그날 내가 받은 미션은 막걸리 한 병을 상에 올려두고 절을 한 뒤, 싱크대에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남편의 ‘목마름’을 대신 풀어주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의 나는 그만큼 지쳐 있었다.
떨어져 사는 시간보다 힘들었던 건, 자꾸 어긋나는 감정이었다.
남편은 늘 잠들어 있거나 회식 중이었고, 나는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하루를 마쳤다.
하루의 끝에서 말을 꺼내면, 그는 이미 다음 날로 가 있었다.
같은 말을 해도 닿지 않는 느낌, 그것이 주말부부의 외로움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혼자서도 나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걷고, 운동하고, 내 시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살면서부터는 여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더 공감을 원했고, 더 많이 서운해졌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관계의 답을 밖에서 찾을수록 더 지친다는 것을.
남편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전에, 내 하루의 갈증부터 돌보아야 했던 것이다.
주말부부의 시간은
상대를 바꾸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 연습이 쌓일수록, 관계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이 시간을 지나오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주말부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점에서 하루를 살아내며 생긴 감정의 시차였다.
위로가 필요할 때는 닿지 않았고, 말을 건넬 수 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 어긋남을 견디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상대의 부재를 탓했고, 해답을 바깥에서 찾으려 애썼다.
주말부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거리보다, 감정을 다루는 순서를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주말부부의 시간은 그때의 나에게는 버텨야 했던 시간이었고,
지금의 나에게는 나를 단단하게 만든 훈련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