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돌이 조금 지나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이른 시기를 선택하는 분위기와 달리,
28년 전의 선택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를 봐주실 분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어린이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아이는 집에 오기만 하면 울었다.
이유를 알지 못했고, 달래는 방법도 몰라 애가 탔다.
나는 아이를 안고 함께 울었고, 지쳐 잠든 아이를 내려놓고서야
하루를 겨우 마무리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주말부부로 지내던 시기였다.
남편은 주말에 잠시 아이의 얼굴을 보고 돌아갔고
부모라는 이름은 함께 쓰고 있었지만
아이의 하루는 대부분 혼자 책임져야만 했다.
결정은 함께 내렸지만
일상은 늘 한 사람의 몫이었고, 그래서 나는 혼자 키우는 사람도,
완전히 함께 키우는 사람도 아닌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상태는 생각보다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받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자리.
그래서 힘들다고 말하기에도,
괜찮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상태.
우연히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아이의 불안’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그중 이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부모가 조급하고 불안하고 예민하면 아이의 뇌는 이유를 몰라도
‘지금은 위험할 수 있다’는 신호를 받는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그 시절의 내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루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는 책임감,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조급함.
내 마음은 늘 긴장 속에 있었고, 그 상태로 아이 곁에 서 있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이라는 낯선 환경보다 불안한 엄마의 상태에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의 기술이나 정보가 아니라
부모가 머물러 있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육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직장에서도 관계에서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흔히 상황을 통제하려 애쓰지만 정작 자신의 불안은 점검하지 않은 채
결정을 내려버린다.
그리고 불안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대개 또 다른 불안을 불러오게 된다.
그래서 성장은 더 잘하려는 노력 이전에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불안을 없애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먼저 숨을 고르고,
마음의 속도를 늦춘 상태로 곁에 서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삶은 늘 최선의 조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상태로 시작하느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