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에는 주 5일제 근무가 아니었다.
토요일 오후 1시까지 근무를 마쳐야 했고,
남편의 얼굴을 보는 날은 대부분 토요일 저녁이나 밤이었다.
도시와 도시를 오가는 방법은 자동차와 버스뿐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네 시간을 달려야 했기에 우리는 늘 두 도시의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
집으로 함께 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큰아이를 임신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이 자동차로 네 시간을 꼬박 달려왔다.
올 때마다 내밀던 작은 선물은 ‘속도위반 스티커’였다.
웃어넘겼지만, 그만큼 서둘러 오고 싶었겠다는 마음은 전해졌다.
긴 운전 끝에 도착한 남편은 저녁을 먹고 곧바로 잠들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쯤 일어나 도시 주변을 잠시 산책하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는 부부였지만 연인이었다.
연인이었지만 많은 것을 하지 못한 연인이었다.
말과 생각은 가득했지만, 행동은 늘 최소한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특별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여건은 늘 부족했지만, 마음만큼은 미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움직였던 토요일 밤은,
지금의 우리를 지탱해 주는 정서적인 연대감으로 남아 있다.
일요일 오후, 다시 남편을 떠나보내는 길은 늘 못내 아쉬웠다.
남편이 차를 두고 와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날이면, 나는 터미널 근처
약국에 들러 피로회복제 한 상자를 샀다.
그리고 버스 운전석으로 다가가 기사님께 수줍게 건넸다.
“기사님, 저희 남편 잘 부탁드립니다. 안전하게만 데려다주세요.”
내게 그 피로회복제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내가 곁에 있어 줄 수 없는 그 먼 길 위에서 남편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자 '기도'였다.
기사님의 무심한 고갯짓 하나에도 안도하며, 멀어지는 버스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것뿐이었기에, 그 작은 병에 담긴 진심은 더없이 무거웠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둘이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말 부부로 살면서 배운 것은
사랑은 둘 사이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남편이 타는 버스의 기사님께,
그가 달리는 도로 위의 무사안일에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이며
나는 사랑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갔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때로 애써 지켜내는 의지가 아니라,
나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세상의 선의에 기대고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함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우리를 키운 건 팔 할이 그 '애틋함'이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남편의 안전을 빌던 시간, 과속 고지서를 보며 함께 웃던 밤,
그리고 기사님의 손에 쥐여드린 피로회복제 한 병. 그 사소하고도 눈물겨운 정성들이 모여 우리라는 집의
단단한 기초가 되었다.
여건이 완벽해서 행복한 사랑은 없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고, 먼 거리를 달려가며,
타인의 손에 서로를 맡겨야 하는 불안함 속에서도 끝내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것.
그 마음을 미루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30년 전 토요일 밤에 배웠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삶의 가장 소중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