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순간적인 집중력으로 한 생명을 살리고 회복의 시작을 돕는 일이 좋았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원무과 직원까지
모두가 협력해야만 가능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응급실은 감동만으로 채워진 곳은 아니었다.
환자와 보호자의 불평, 언어폭력과 때로는 신체적인 위협,
그리고 늘 가까이에 머무는 죽음.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공간이었다.
보건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어쩌면 한 아이의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키우던 개에게 목을 물려
사망한 채 실려 온 다섯 살 아이.
뒤늦게 도착한 아이의 엄마는
응급실 한가운데서 실신했고,
이내 비통한 울음으로 공간을 잠식했다.
수습을 위해 다가간 내 손목을 붙잡고
“살려 달라"라며 20~30분 넘게 놓지 않던 그 손.
어쩔 줄 몰라 서 있던 내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근처 독서실로 향했다.
졸음을 쫓으며 문제집을 넘겼다.
집중이 되지 않던 어느 날,
친구의 꾐에 넘어가 기분 전환 삼아 나간 4 대 4 소개팅 자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공부하랴, 연애하랴, 근무하랴
숨 돌릴 틈 없는 나날이었다.
누군가는 말리고 싶은 선택이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꽤 진지했는데,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하고 싶어했다.
필기시험과 면접 날마다 운전을 맡았고 기다리면서
자신의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친정 가족에게는 축제였지만
남편에게는 혼란의 순간이었다.
“내가 혼자서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어.”
임용을 포기하라는 말과 함께
비장한 얼굴로 꺼낸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날, 더 비장한 쪽은 나였다.
“헤어지자.”
단호한 한마디에
남편의 얼굴에는
‘이건 아닌데…’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나의 선택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인생은 조금 더 안전해 질지 모르지만
그만큼 늦어진다.
중요한 선택은 대부분
불완전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발령을 받아 다른 도시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주말에만 만나기로 하고 결혼했고, 주말부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무모한 용기가 아니라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나의 단호한 선택이었다.
삶은 늘
모든 조건이 갖춰진 뒤에
시작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결정일수록
아직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우리 앞에 놓이곤 한다.
그래서 문득,
완벽해질 때를 기다리느라
아직 시작하지 못한 선택은 없는지
한번쯤은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