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습니다

by 나와뜨리들

어제저녁은 조금 거창한 자리였습니다.
오랜만에 여동생 부부와 함께 고기를 먹으며 술 한잔을 기울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부모님 이야기로 흘러갔고,
그중에서도 아버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단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
모범이 되는 신사적인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의 아버지는 조금 다릅니다.
예전처럼 체면이나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으시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며 지내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조금 실망했습니다.
세상의 체면이 전부는 아니지만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걱정도 되었고 마음도 복잡했습니다.


그런데 제부와 남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버지라는 틀을 딸들이 먼저 만들어 놓은 것 아닐까?”

그 한마디에 마음이 멈췄습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여든을 넘긴 지금의 아버지는
같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어쩌면
노년의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도 있으니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제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말해 준 제부와 남편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버지를 ‘아버지’라는 역할로만 보지 않고
한 사람의 개인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 안에 가두어 둡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실망하고
그 이미지가 깨지면 서운해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합니다.
나이가 들고 상황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역할에서도 조금씩 내려오게 됩니다.


만약 세상에
제부나 남편처럼
조금 더 객관적으로, 조금 더 너그럽게
타인을 바라봐 주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어떨까요.


이미지 속에 갇혀 있던 누군가는
조금은 자유로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저처럼 생각을 고쳐 앉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바르게 바라보게 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더 어른이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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