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자리잡은 불만족 스러운 것들을 털어 낼 생각으로 쓴 글,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자랑하고 떠벌린 글들이지 않은가. 블로그와 게시판에 남긴 글들은 뭐가 있었는가. 일처리가 늦는 것에 대해서 지적하는 글을 남기고, 만족한 것에 감사하다고 촉새처럼 썼다. 기쁘다고, 슬프다고, 외롭다고 쓴 글은 몇 개인가..
"글이란 적절한 정신 상태에서 써야만 한다. 고통, 분노, 불안, 슬픔, 그 밖에 차갑거나 뜨거운 모든 감정은 정신을 경직시키거나 지나치게 흥분시킨다. 그렇게 쓰인 글은 무미건조하거나 너무 격렬한 투로 치우치고 만다. 책 한 권을 잘 써내는 것은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195쪽 중.
'적절한 정신'이란 무엇일까?
나는 적절한 정신으로 글을 써왔고 쓰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침묵의 기술>, 이 책은 말과 침묵이 주는 '놀라운 결과'와 더불어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형태별 차이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오래된 장맛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 향, 그 맛 자체다. 다른 것은 더 필요 없다. 이 책도 그렇다. 잡다하지 않으며 간결하다. 간결하다는 것이 자칫 내용이 없다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예상 밖이다.간결하면서도 깊다. 오래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생각과 사고가 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침묵의 기술>
혼탁스러운 삶을 벗어나야 하는데도 그 안으로 들어가야 만 살 것은 같은 세상에 머물러 있다. 제주로 가고 시골로 가서 고립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잡다한 삶을 거두어 버리는 과감한 결단이 나를 세우는 길임을 먼저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할 일인가 싶어 부러운 눈으로도 봤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다.
삶을 더 값지게 하는 것은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천하는 일이다.
많은 책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만 결국 실행하는 부분에서는 더 말을 끌어가지 못한다.
1716년에 태어난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가 쓴 <침묵의 기술>. 저자는 2016년에 서 있는 우리보다 300년 전 사람이다. 300년 전의 사람이 1696년에 나온 작자 미상의 책, <말하기와 침묵하기를 위한 안내서-특히 종교 문제에 관하여>를 근거로 해서 쓴 책이 <침묵의 기술>이다.
<침묵의 기술>중에서
지금 온갖 말들이 무성한 시대, 말로 일어서고 말로 무너지는 일들이 그 어느때보다 경쟁하듯 쏟아진다.
이러한 시대, 말하는 것도 힘이지만 말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또 하나는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써야 할 때 쓰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말하고 싶을 때 말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글을 써야 할 때 왜 침묵해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 설득한다.
책 구성은 간결하다. 2개의 큰 주제, 말과 침묵, 글과 침묵 속에서 침묵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중복되기는 하지만 그만큼 침묵이 주는 강점이 어떠한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한 번 둘러보자.
온갖 말이 난무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떼를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그러한 말과 글이 난무하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침묵의 기술>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정말 해야 할 말인지 안 할 말인지 생각해보고, 써야 할 말인지, 쓰지 말아야 할 것인지 좀 더 고민하고 고민해보라고 설득한다.
이 책 침묵의 필수 원칙에서 소개하는 네 번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그냥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형태가 다 다르다. 침묵이 전하는 메시지는 내가 어떤 형태로 입을 닫는가에 따라 상대에게 다르게 전달된다.
때와 장소에 따라 상대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뜻으로 입을 닫는 것은 '신중한 침묵'이다. 감정을 토로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상대를 기만하거나 당혹스럽게 할 의향으로 입을 닫는 것은 '교활한 침묵'이다.
혀를 다스려라!
최근 어떤 침묵으로 상대를 괴롭혀 봤는가. 신중한 침묵이 있는가 하면, 교활한 침묵, 아부형 침묵, 조롱형 침묵이 있다. 감각적인 침묵이 있는가 하면 아둔한 침묵이 있고, 동조의 침묵이, 무시의 침묵, 정치적 침묵,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침묵이 있다. 글도 다르지 않다. 나에게나 남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 주는 그 악한 기운과 좋은 기운에 대해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서술해나가는 <침묵의 기술>은 인간 사회에 삶의 본질을 찾아갈 것을 권고한다. <침묵의 기술>은 말과 글이 때로는 나를 살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나를 죽일 수도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말을 해서 다치는 것보다 입을 닫아서 이로운 것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건전한 취향, 상식과 더불어 도를 넘지 않기 위한 주의력이 필요하다. 종착지에 다다른 다음에도 마차가 계속 달리지 않기 위해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적절한 범위에 뭔가를 더하거나 덜어내면 전체 구성은 일그러지기 마련이다.-155쪽 중
얼마 전 친구와 만나, 후배들이 모이는 자리에 선배로 참석해서 말을 하다 보니 잔소리가 돼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가지 말아야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 책에 나이 든 사람의 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있어 공감이 되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말을 해서 듣는 이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부터 피해야 한다. 늙어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는 잘못 중에는 말하기를 지나치게 밝히는 것도 포함된다."-100쪽 중
나이 든 사람들의 지혜로운 말이 많아지는 사회, 그런 사회가 우리를 더 풍요로운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지금 사회가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는 것, 써야 할 때 써야 하고 쓰지 않아야 할 때 펜을 내려놓는 것이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수많은 미디어들이 앞다투어 나 좀 봐달라고 소리치고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며 우리 몸과 마음을 향해 말과 글로 공격을 해오고 있지 않은가.
"글을 써야 할 때 펜을 붙들어두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며, 펜을 붙들어두어야 할 때 글을 쓰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196쪽.
<논어>-위령공에서 공자는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불어 말을 해야 할 때 더불어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
'욕망을 표현하라'고 부추기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라'고 유혹하는 사회에 살면서 <침묵의 기술>은 괴로움과 분노로 차 있는 몸과 마음을 위해, 나의 건강한 정신을 지키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삶을 돌아봐야 할 시간에 동반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