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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윤웅 Aug 06. 2018

수박씨, 뱉어야 하나? 그냥 모른척 먹나?

수박 먹으며 고민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사람들은 수박 살 때 고민을 한다. 그런 고민 없이 어떤 것이 잘 익었는지 머리 쥐어박을 때나 꿀밤 때릴 때 같은 손을 수박을 향해 때린다. 뭐 좀 다른 소리가 나나? 줄무늬가 진한 것이나 꼭지가 싱싱한 것을 고르라는 팁도 있지만, 막상 마트에서는 대충 고른다.


판매자가 당도를 어느 정도 맞추지 않았겠나 믿고 먹는 거지 뭐. 잘 익은 건 다행이고 그렇지 않음 어찌할 거야.


하여튼 그 소리가 그 소리인 듯싶다. 예민하지 않은 귀라 그래. 그래도 사람들은 나와 달리 나름 다른 소리를 낸 것을 찾아 담고는 무슨 상상을 하는지 남모를 미소를 입술 끝에 태운다..



그렇게 선택을 받은 수박 한 통이 냉장고 안으로 들어갈 새 없이 접시에 담겨 나온다. 고민이 시작된다.


이렇게 살 때 먹을 때 고민하게 만드는 과일이 있을까 싶다. 바나나? 참외가 좀 비슷한 고민을 하게 만드나?

씨를 먹나, 아니면 씨를 없애고 먹나? 여하튼 다음 날 눈으로 확인하는 날에는 별로...


나의 고민은 수박씨. 수박씨를 골라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먹어버려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수박 먹는 일은 어떤가. 오늘같이 더운 날에는 수박 한 조각이 간절하다. 한 입 베어 물 때 입안 가득한 수박의 향과 물면서 배어 나오는 즙이 입안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그 한 입의 소리는 비싼 돈 내고 모처럼 들어간 오케스트라 공연의 지루한 연주곡보다 좋다.

 

집에서 먹는 수박의 씨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어떨 때는 그냥 눈에 보이는데도 급하게 먹고 어떤 때는 하나하나 뱉어낸다. 그릇에 제대로 떨어지면 다행이고 잘라낸 조각 위에 떨어질 때는 미안스럽지만 딴 사람이 흘린 척 손으로 집어낸다.


어려서는 서로 먹겠다고 나서니 수박껍질 하얗게 드러나게 먹지도 않았다. 일단은 한 입 베어 무는 게 더 급한 일이다. 수박씨 뱉을 새가 어디 있나. 그냥 먹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 그리고 내가 입을 덴 것을 다시 찾아 먹는다.


사람들과 있는 자리에서 교양 있게 먹는다고 휴지 한두 칸 떼어내거나 크리넥스 티슈 두어 장 깔아 놓는다. 그 위에 손으로 고이 받은 씨를 툭툭 털어놓는다. 교양 있게.


먹는 게 넘쳐나도 수박은 지구상 매력적인 과일이다. 사과 알만한 수박도 나왔다. 머리통 만한 수박 한 통은 먹어야 여름을 제대로 보내는 일이 아닌가.


가릴 새도 없이 목이 타는 날에는 에라 모르겠다, 어디 가겠느냐 싶게 씨 뱉을 새도 없이 먹는다. 때가 되면 그냥 자동으로 걸러져 나올 일인데 굳이 먹는 단계에서 고민할 이유가 없다.


다만 혹여 어딘가에 걸려 뱃속에서 수박씨가 자라나면 어떨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역시, 나는 창조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흐뭇해한다.


이런 바보가 있나.


40도를 맛본 올여름, 35도 더위는 덥지도 않다. 오늘 밤에도 수박을 한 통 먹을 일이다. 이제 곧 수박의 물이 흐려지고 맛이 빠질 때가 올 것이다. 미처 입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그 수박 물을 손 등으로 훔치며 보내는 저녁의 시간을 그리워할 때가 머지않았다.


오늘 밤에는 어떻게 할까? 수박의 씨를 골라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먹어야 할지.


밖에서 먹는 수박은 혀끝으로 씨를 모아 입술 가운데로 몰고 온 후, 볼에 힘을 모아서는 멀리 밀어내면 끝이다. 혹 어디 땅속으로 잘 들어가 내년 여름에 볼록한 수박 하나 나올까 생각하면서. 집 안에서 먹는 일은 얌전하게 수직 낙하시키는 일이 되어야 방바닥 끈적함을 줄일 수 있다. 안 그러면 잔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뱉을 것인가, 그냥 먹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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