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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윤웅 Jul 25. 2019

박경리의 일본을 바라보는 눈, <일본산고>

우리의 불매운동은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일본이 수출규제로 시비를 걸어왔다. 그들이 취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저렇게 할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본 외무상이 우리 대사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했는가. 일본은 상대국을 국가로 격을 맞추지 않는다. 속국 대하듯 하는 일본 장관을 언제까지 바라만 봐야 할까.


일본은 전략물자관리 미비를 이유로 한국을 수출규제국가로 지정했다.     

이러한 정국 속 시민들이 일본 불매운동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한 대형마트가 일본산 맥주 할인 판매 행사를 열었다. 시민 반응은 엇갈린다. 불매운동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참여하거나 말거나 개인 의지와 선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은 과거 사례를 들어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며 내부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불매운동으로 우리 의지를 보여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내부적으로 이번 일을 통해 진짜 일본을 발견하는 일이 더 급한 일이 아닐까.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그들로부터 상대에 대한 예절과 상식을 찾기 어렵다. 그들이 감추는 발톱을 드러낼 수 있게 냉정하게 풀어가는 게 우리의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쌍둥이 형제 중 하나가 교실에서 나를 약 올렸다. 몇 번 참았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도 해야 할 때가 있고 멈출 때가 있다. 한 번 붙자고 했다. 그도 좋다고 했다. 여름날 학교가 끝나고 미루나무 아래서 그와 내가 주먹을 쥐었다. 반 친구들이 우리 둘을 빙 둘러싸고 구경했다. 내 발이 그의 배를 찼다. 발이 먼저 나간 나도 놀라고 그 발에 쓰러진 그를 보고 또 놀랐다. 물을 달라는 그를 위해 수돗가에 가서 물을 떠다 먹였다. 그 후 그와 더 보지 않았다.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며 살 듯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들이 있다. 상대를 똑바로 알아야 나아갈 길이 보인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숨겨진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화를 발견하고 차이를 알아가는 것만큼 그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일을 짚어보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사는지 물어야 할 때이다.


최근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려는 즈음 일본이 보여주는 태도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다. 가는 길을 막고 남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훼방꾼, 남의 발목 잡고 늘어지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인간과 다를 게 있는가. 우리가 잊고 살았다. 놓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다른 면에서 보면 이번 일은 좀 더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정국 속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비평한 박경리의 <일본산고>가 화제다.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진실의 문을 열지 못하는 일본과 증오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며, 독자로 하여금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분명히 알아야 함을 강조한다. 왜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감추고 ‘진실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지 차분하고도 논리적으로 판다.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을 통해 일본과 교류하면서도 정작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한국인의 분노와 한을 풀어주지 않는다. 한 국민의 분을 풀지 않는다면 관계는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박경리는 ‘아닌 것을 그렇다 하고 분명한 것을 아니라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누가 그런 무서운 일을 하는가.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교과서는 여전히 피해 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 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고 분명한 것을 아니라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그 무서운 것이 차츰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인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30쪽, 박경리의 <일본산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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