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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윤웅 Oct 18. 2021

응축된 힘이 더 세다

책으로 만나는 세상

무엇 때문이라고 핑계 댈 수 있는 이유가 줄어들고 있다. 내가 처한 문제 원인을 밖에서 찾는 게 쉬워 변명이 앞선다. 함께 일하는 사람은 하나 둘 사라진다. 그들은 떠난다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 전화하는 것도 오는 것도 이전과 다르게 줄어든다. 잠시 이익이 있는 곳에 들렀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짧은 인생을 긴 변명으로 산다. 안 되는 것은 상대에게 있게 코로나19 때문이라며. 진짜?


생존이 달린 먹고 사는 일에 급하다. 있는 사람은 더 갖기 위해 몰두하고, 없는 사람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쓴다. 남의 일만 같은 주식, 언제나 살까 망설이다 종합주가지수는 고점을 찍는다. 망설이는 자에게 기회는 없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님을 보여주듯. 떨어지면 사야지 하는 생각만으로는 ‘살 수’ 없다.


정작 응원을 해야 하는 곳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뜬구름 같은 일에는 모두 환호성을 부른다. 별것도 아닌 일을 큰일로 포장한 뉴스는 여전하다. 언제 들어봤냐 싶은 한 연예인의 세쌍둥이 임신 소식이 셸피와 함께 뉴스 앱 첫 화면에 뜬다. 심각하게 생각하고 따져봐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다. 뇌를 자극하는 제목과 사진으로 싸움을 붙이고, 문제를 만든다.


우리 사회는 정상인가. 우리는 남들이 만들어진 생각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진짜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건가 물어볼 일이다. 진영 논리에 휘말린 공정, 진짜 공정을 물어보자.


여야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논쟁 중이다. 반대 측은 추상적인 정의 규정만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본질은 보이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는다. 언론보도 피해자 구제를 위해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한 상호 공감 없이 처리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으면 한다. ‘아니면 말고 식’ 보도는 언제나 사라질 수 있을까. 언론의 몇 줄 사과문 하나로 피해자가 잃어버린 모든 것과 상쇄하는 건 가볍다. 독자는 신중하면서도 품격 있는 뉴스를 만날 권리가 있다.


힘을 가지려 전력을 다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눈치작전도 치열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보인다. 힘을 내려놓으려 하는 사람이 있는가. 각자의 이유로 힘을 쓰려고 모인 곳이 ‘여의도’가 아닌가. 서로 힘자랑에 빠진 세상에서 힘을 빼라고 권하는 문장에서 위로받는다. 진짜 힘은 힘을 뺄 때 나온다.


잔(殘)의 테크닉으로서의 자기-삭감. 사소한 불행들, 불행의 전조들, 아픔, 상실, 실패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인생의 경고음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과장되게 해석하여 스스로를 꾸짖을 것. 자기-삭감은 삶의 스크래치에 비통해하여, 이 비통함을 헛된 욕망에 대한 경고로 활용하는, 호들갑 떠는 자기-보존 전략이다. 주어진 힘을 최대한 삭각하려 노력해라. 삭감의 노력을 해도 결코 힘은 삭감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노력이 없을 때 힘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힘을 증대시키려 하지 말고 삭감시켜라. 그때 힘은 응축된다.
-67쪽, 김홍중의 <은둔기계> 중에서


진짜 힘을 써야 할 곳에 힘을 쓰고 있는지 물어보자. 힘쓰기 전에 생각하자. 누구에게 힘을 쓰고 있고 무엇을 위해 힘을 버리고 모으고 있는지를. 엉뚱한 곳에 쓸 힘을 제대로 모으면 불행은 사그라질 수 있다.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는 사회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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