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주간 줍줍 잼
1.
딸의 친구로부터 생일선물을 받았다.
"엄마, 이거 아인이가 엄마 주래."
방과 후를 다녀온 딸이 건네는 노트 한 권과 키링들.
“진짜?”
“진짜. “
“진짜 나 갖다주라고 했다고?”
“응 엄마생일 선물이래.”
“아니, 5학년이 무슨 돈이 있다고.”
예상하지 못한 생일선물 공격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인들로부터 받은 카톡 선물들도 하나 같이 모두 다 감동과 감사가 넘쳤지만, 5학년 소녀에게 생일 선물을 받는 순간, 아 나 진짜 잘 살고 있구나 싶었다. 딸 친구한테 생일 선물 받아본 사람, 나야 나!
아이들의 친구들을 안아주고 싶다. 더 많이 안아줘야겠다. 내 아이들의 진짜 행복은 친구들과의 시간에서부터 올 테니.
2.
생일이자 방학시작, 쉬고 싶었다. 남편의 신용카드 연회비 보상차원에서 만들어진 호텔 멤버십으로 2박 3일 휴가를 꾸렸다. 남편은 바쁘기에 아이 둘과 수영이나 하다 올 생각이었다. 두 번째 날은 스위트룸으로 예약이 되어 두 배이상 객실이 크고 좋았다. 방이 좋으니, 엄마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도 오시라 할까?"
"응. 엄마 생일이니까 할머니도 부르자."
"고마워."
"할머니가 엄마를 낳았는데, 당연히 할머니도 축하를 받아야지."
호텔 부지가 넓고 창밖으로 잘 정돈된 정원과 떠오르는 비행기들을 볼 수 있어 엄마가 여행온 거 같다며 매우 좋아하셨다. 실내수영장도 풀이 3개나 있어 서울 호텔치고 굉장히 쾌적한 편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왔던 곳인데, 이젠 아이들이 너무 커버려 미끄럼틀이 작게 느껴졌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
물개들끼리 잘 놀 줄은 알았지만, 할머니까지 잘 챙길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수영을 하게 된 할머니가 물을 무서워하자 초이 아들이 수영강사처럼 차분히 호흡법부터 가르쳐주었다.
“할머니 머리를 더 넣어봐.”
“할머니 힘을 빼고 숨을 이렇게 음~파! 음~파! “
“할머니 할 수 있어.”
너무너무너무 대견하고 예뻤다.
3.
남자 탈의실에서 혼자 씻고 나와야 하는 아들이 걱정되어 내가 먼저 후다닥 씻고 나가 기다리는 동안 첫째는 할머니의 샤워를 도왔다고 했다.
“할머니 이게 샴푸고 이게 린스야. “
“락커 키는 내가 챙길게. “
“할머니 수건은 여기 있어요.”
엄마로부터 내 딸의 다정함을 칭찬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정말 근사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더운 날 나를 낳느라 고생하셨을 엄마에게 호텔 침구만큼이나 손주들의 배려가 폭신했을 것이다. 효도는 항상 아이들이 다한다.
“엄마 만화나 영화 캐릭터 중에 누가 젤 좋아? “
“음, 글쎄. 빨간 머리 앤? “
“그렇구나~ 짜잔~“
엄마의 취향을 알아맞혀 엄청 기쁘다며 용돈을 다 털어 샀음을 강조하면서 선물을 안겼다. 아빠 생일 때 직접 만든 카드에 비하면, 빈약한 단 몇 줄의 편지였지만, 딸에게 책 선물을 받는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울 엄마라고 박힌 저 세 단어가 너무 갖고 싶게 예쁜 만큼 사악하게 비쌌다며, 이제 통장잔고 600원이라고 하였다. 기분 같아선 확 채워주고 싶었지만, 내 생일이니까 받는 기쁨만 누렸다.
4.
퇴실해서 집으로 오니 남편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당신이 맨날 똑같은 거만 하고 다니길래.”
바쁜 와중에 백화점에 다녀왔나 보다. 딱 봐도 금부치인데 감동이 안 온다. 나 왜 이러지. 그러나 쪽잠 자고 오픈런해서 사온 걸 알기에, 애써 좋은 척 웃으며 목에 걸어달라고 했다.
“엇, 줄이 이 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내 목이 두꺼워서 말이지.”
“줄이 짧거나 마음에 안 들면 바꿔준다고 했어.”
“아, 그랬구나.“
딱 개목걸이 같았다. 선물은 죄가 없지만 아웃이다.
(체크아웃하고 짐 싸들고 운전해서 오는 거 그거 대신해주러 와줬음 더 좋았을 텐데. 일찍 끝났다고 차라리 백화점에서 만나자고 했으면 맛있는 거나 다 같이 먹고 들어와서 쉬었을 텐데. 나 그런 거 더 좋아하는데.) 집 도착하자마자 남편이 있어 밥부터 안치는 엄마. 아 혼자 누울 수도 없는 슬픈 생일 다음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