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북토크를 합니다
친구가 암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당일 보호자(남편)가 꼭 있어야 하기에 그 기간 동안 친구의 아이들을 내가 봐주기로 했다. 이왕 우리 집 캠프를 하게 된 이상, 뭔가 특별한 서울여행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과학관, 동물원, 만화방, 보드게임방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려고 시동을 거는 나에게 딸이 한 마디 한다.
"엄마, 뭘 꼭 하려고 하지 마."
"아, 아니…“
"그냥 놀이터만 가도 좋을 거야."
"그렇지? 그래.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다. 각자가 스스로의 기쁨을 만들어내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내가 신나서 하는 일이 상대에게는 부담이나 과잉일 수도 있다. 나의 기쁨을 우선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3대 일본여행을 마치 내가 다 짠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비전을 제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재무적인 권한만 움켜쥔 것이었고, 유용한 정보를 서치 하는 자잘한 업무는 남편 몫이었다. 과하게 쏟아내는 계획들을 잘 받쳐주는, 혹은 날카롭게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가족들이 새삼 고맙고 든든하다.
1. 온천으로 마무리를 해야 해.
2. 도심의 화려함을 보았다면 근교 시골마을의 정취도 넣자.
3.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까먹는 기차여행은 빼먹을 수 없어.
4. 한국인이 많이 없는 곳이면 더 좋을 텐데.
5. 료칸을 가족당 잡으려니 너무 비싸다. 료칸식 호텔로 하자.
"부인, 여기 어때?"
"우와! 조식도 주고 석식도 주고 술도 무제한이네."
"응. All 인클루시브야."
"올~ 너무 좋다!"
나는 사실 하코네 쪽을 보고 있었다. 도쿄 여행 중 온천을 넣는 일정은 하코네가 가장 유명하고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었다. 근데 관광지마다 한국인들로 붐빌 동선이 매우 피곤하게 느껴졌다. 여행 막바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온전히 쉬고 싶은데…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남편이 딱 그런 로망을 실현해 줄 곳을 제비처럼 물어왔다.
호텔비에 전 일정 조식, 석식 뷔페가 포함되고, 새벽부터 자정까지 무제한 이용가능한 노천온천이 있고, 라운지 바에는 와인, 사케, 커피, 위스키, 각종 스낵, 아이들 음료수까지 먹고 또 먹고, 마시고 또 마실 수 있는 곳!
만화방, 탁구장, 다트장, 키즈공간 모두 무료! 색상별 예쁜 유카타&실내복 일정 내내 무료 대여(_옷도 많이 싸갈 필요가 없네요_) 직접 온천물에서 건져 올리는 이색적인 온천 달걀체험, 야식으로 라멘도 주고(_배불러서 한 번도 못 먹었어요_) 아사히 생맥주 무제한(_제일 신기하고 신나는 경험_) 우와, 여기 있는 2박 3일은 정말 지갑이 필요가 없네요.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되기 때문에 마사지나 온천으로 피로를 풀어줘야 한다. 매일 바쁘게 치열하게 살다가, 여행에서만큼은 푹 쉴 수 있기를. 그게 비록 시댁 식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일지라도 돌아가서 또 열심히 달릴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할 수 있기를. 가장 큰 객실을 따로따로 세 개를 빌려 개인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혼자 밤낮으로 온천을 즐겼다. 머리는 차갑게, 몸은 뜨뜻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즐기는 겨울 노천온천은 정말 중독적이다. 은퇴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온천여행을 해야지 생각했다. 찜질방 정기권 끊는 할머니가 되려나.
통유리를 통해 눈 쌓인 겨울숲을 즐길 수 있는 로비의 인테리어와 감싸안은 공기까지도 멋졌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오목도 두고, 아빠랑 축구게임도 하고, 지들끼리도 탁구채를 빌려 알아서 참 잘 놀았다. 아무도 나를, 내 지갑을 찾지 않았다. 차 한잔 내려 장작 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우리의 책을 생각하는 시간이 근사했다. 우리의 책이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자비심과 이기심 사이 그 어딘가에서 나는 책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여행은 끝났다. 숯불에 구워 먹던 아침의 빵을 기억한다. 호기심 가득 요리조리 뒤집어가며 열심히 빵을 구워댔던 나. 뭐가 그렇게 좋은 지 빵그르르르 빵그르르르. 까맣게 타들어가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속은 촉촉하게. 어떤 상황에서도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대형서점에서 북토크를 하게 되었다. 내 기도가 이루어진 걸까? 기쁘지만, 기쁘지만은 않다. 설레지만, 설레지만도 않다. 그냥 그 담백한 빵 한 조각이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이야기가 마음으로 전해지는, 모든 감정들이 포함된 올인클루시브 북토크. 그냥 그대로도 너무 좋은 시간이 되기를.
*북토크 신청 링크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려요~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78027120
욕조에 몸을 담근다. 몸도 마음도 매끈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