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그리워하다, 빵을 구웠어.

아무튼 빵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by Wishbluee
하지만 빵이 가장 절실할 때는 바로, 우울할 때다. 부드러운 빵 냄새, 따뜻한 온도, 그리고 반죽을 만지던 손끝의 감촉까지. 빵은 나의 모든 감각을 감싸 주었고, 또 깨워 주었다.

p86 '아무튼 빵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송민경 작가님의 글 中

외로운 타지 생활에 우울할 때, 손수 빵을 구웠던 송민경 작가님.


적막한 방 안에서 홀로 있다가, 마음까지 텅 비어갈 때. 그대로 무너지지 않고 일어나 반죽을 하고 성형을 했겠지. 말랑한 그 감촉. 그리고 오븐에 넣었을 때, 완성된 빵에 대한 기대감이 차올랐겠지. 구워지는 동안 풍겨오는 향긋한 빵냄새가 커다란 거실에 가득했겠지. 갓 구워진 빵이 손에 닿으면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겠지. 조심스레 떼어내 입 안에 넣었을 순간, 눈을 지그시 감고 우물우물 입 안의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겠지. 순간의 행복을 나눔의 기쁨으로 모두에게 퍼트릴 미래를 기대하며, 조용히 식힘망 위에서 빵이 식어가는 동안. 외로움도 슬픔도 그리고 우울도 같이 식어갔을 테지.


송민경 작가님의 주방을 상상해 본다. 여러 명이 사용했을 공간이니 아주 넓었겠지?


오래전 아주 작았던 나의 부엌이 떠올랐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엔, 늘 부족한 것이 수납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건은 너무 많다.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신혼집은 좁았다. 물건은 넘쳐났고, 여기저기 보기 싫게 튀어나온 잡다한 상자들로 인해 정리를 하려면 늘 좁은 틈에 몸을 구겨 넣고 끙끙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어코 미니오븐을 장만했다.


집의 크기만큼, 오븐도 작았다.


나의 임신으로 우리 집의 수입도 작아졌다. 그런데 식구는 늘어났다. 늘 돈이 부족했다.


늘 내 발걸음을 멈추던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유행빵은 너무 비쌌다. 그걸 사 먹으려면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 당시 나는, 대체 무슨 깡다구였을지 모르겠지만, '사 먹지 못하면, 만들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좁다란 우리 집에 꾸역꾸역 미니오븐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밀가루를 사고, 버터를 샀다.

제과용 냉동 버터는 크기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다.

제일 처음 구웠던 빵은 간식류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얻은 레시피로 구워냈던 머핀들. 파운드케이크들.

아이에게 반죽을 떼어주고 도란도란 만들던 엉망진창 못난이 쿠키들.


비싼 빵 사 먹을 돈으로 실컷 베이킹 놀이를 했다.


발효빵을 만든다고 이스트를 사다가 부풀어 오르는 과정을 지켜보며, 기다림을 배웠다.

구워내니. 푹 꺼져버리고 떡처럼 변한 맛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저렴한 미니 오븐으로는 섬세하게 온도를 조절할 수 없었다. 내가 정성을 다한다고 그 결과가 반드시 괜찮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정말 형편없는 빵들을 매일매일 잔뜩 구워냈다.


말 그대로 놀이만 실컷 했다. 그 덕에 빵을 실컷 먹을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몇 년 후,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나의 쿠키 실력은 조금 늘었다.

그 맘 때 즈음,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쿠키를 구워, 특별한 날에 어린이집에 선물로 가져가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알록달록, 아이싱 쿠키를 만들어서 보냈다. 동네 엄마들이 장난 섞인 원망을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한 뼘도 안 되는 그 조그마한 손으로 쿠키를 붙잡고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나의 놀이에 아이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같이 쿠키를 만들던 큰 딸은 올해 고삼이다. 그리고 엄마만큼 빵순이로 자랐다.

나는 우리 집 쿠키 파티시에자리를 큰애한테 넘겨주었다. 단풍잎 같던 손이 이제는 내 손바닥 만하다.

레시피를 검색하고, 능숙하게 재료를 계량하고 뒤처리까지 말끔하게 해 놓는, 제법 베테랑이다.


미니 오븐이 그 수명을 다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식오븐을 샀다. 그렇게 함께 한 동양매직의 '스팀오븐'은 몇 년 동안 많은 빵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역시 고장이 나서, 우리 집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 이제, 나는 오븐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함께 빵을 만들던 큰 아이는 에어프라이어만으로도 내가 엄두도 내지 못하던 발효빵인 식빵을 만들고, 근사한 초콜릿 쿠키를 구워냈다.


그리고 아이가 어렸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예쁘게 포장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족들에게 맛 보여준다. 언젠가 그 애 만의 주방이 생기면, 그곳에 알맞은 오븐을 선물해 줘야겠다. 그 오븐에서 구워 나올 향기로운 빵과 쿠키에 배어 나올 그 애 만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 보면서.



집밥과 러닝, 단정한 미소만큼 단정한 삶을 살고 계시는 송민경작가님의 하루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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