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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난 초록

아직은 연두_박성우 다시 쓰기

by 줌마피디 신이나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난 초록이 좋아 연두가 익은 초록

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

냉장고에 시원하게 해서 와작 씹는

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잘 익은 올리브 풍미가 느껴지는 듯하고

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

마요네즈에 콕 찍지 않아도 톡톡 즐겨 먹는

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

싱그러운 셀러리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한 초록

풋자두와 풋살구의 시큼시큼 풋풋한 연두,

통통 수박과 통통 멜론의 달디단 고당도 초록,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풋내가 나는 연두

난 초록이 좋아 차분하게 우아한 초록

연초록 그늘을 쫙쫙 펴는 버드나무의 연두

찐연두 버드나무가 꽉꽉 들어찬 숲의 초록

기지개를 쭉쭉 켜는 느티나무의 연두

기개가 멋진 소나무가 울창한 초록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난 초록이 좋아 연두가 익은 초록

누가 뭐래도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

누구나 알듯 차곡차곡 연두를 거쳐온 초록

빈집 감나무의 떫은 연두

전원주택 마당의 여유로운 초록

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

식물원 산책길처럼 단아한 초록

난 연두가 좋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연두,

난 초록이 좋아 늘 내 맘에 피어 있는 초록,

연두색 형광펜 연두색 가방 연두색 팬티

초록색 만년필 초록색 모자 초록색 양말

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커튼 연두색 베갯잇

초록색 운동화 초록색 테이블보 초록색 앞치마

난 연두가 좋아 연두색 타월로 박박 밀면

난 초록이 좋아 초록색 칠판에 글을 쓰면

내 막막한 꿈도 연둣빛이 될 것 같은 연두

내 평범한 오늘도 깨어나는 것 같은 초록

시시콜콜, 마냥 즐거워하는 철부지 같은 연두

기품있게, 조금 더 온화하게 지혜를 채우는 초록

몸 안에 날개가 들어 있다는 것도 까마득 모른 채

느껴지지 날개가 서서히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배춧잎을 신나게 갉아 먹는 연두 애벌레 같은, 연두

비오면 어때 배추전과 막걸리의 깊은 맛을 아는, 초록

아직 많은 것이 지나간 어른이 아니어서 좋은 연두

벌써 많은 날이 지나가버렸어도 아직 순수한 초록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초록이 아닌 연두

난 초록이 좋아 알맞게 연두가 익은 초록


#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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