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추억의 놀이 소환
한낮의 햇볕은 여름 끝자락이라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따가웠다. 골목을 따라 삐걱 대문을 열고 뛰쳐나온 아이들은 부리나케 운동장 가장자리에 모여들었다. 어느 집 부엌에서 아직도 밥 짓는 냄새가 새어 나왔지만, 그 냄새보다 더 자극적인 건 아이들의 몸에서 짠내 폴폴 나는 땀 내음이었다.
"말뚝박기 하자!"
영심이처럼 머리 묶은 소녀가 먼저 외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편을 먹겠다며 '데덴찌~'를 외치면서 손바닥과 손등으로 편을 나누고 누가 말뚝이 될지는 어김없이 '가위바위보!'
'말뚝'이 된 아이들은 허리를 굽힌 채 엉덩이를 들고 앞사람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박아 마치 작은 언덕을 만들 듯 줄지어 선다. 그러면 상대편 다른 아이들이 다 들리도록 작전을 짠다. 제일 살집이 있는 아이는 맨 뒤에 타기로 한다는 작전. 이후 한 명씩 튀어나와 그 위로 있는 힘껏 몸을 실어 뛰어오른다. 얼핏 보면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땀과 흙먼지 가득한 운동장 안에서 아이들은 누구도 그 무게를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가끔 말뚝 저 어딘가 엉덩이와 머리 사이 조용한 신음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아이들의 머리 위로 들리는 것은 "다 죽었어! 간드아~!" 우렁찬 소리 뒤에 엉덩이로 등을 찍어 누르는 퍽퍽 소리.
허리를 구부린 채 버티고 서 있는 아이도, 그 등을 밟고 뛰어오르며 깔깔대는 아이도, 이상하게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을 자기들 것처럼 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게를 버티지 못한 말뚝들의 바지는 흙으로 더러워지고, 무릎은 금세 시퍼렇게 멍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런 건 다친 것도 아니었다. 어제 든 멍 위에 또 생기는 멍이었을 뿐이니까.
찌는 듯한 더위도, 바지락처럼 앉았다가 뿅 튀어 오르는 동작도, 아이들을 지치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깨어 있게 만든 듯했다. 툭하면 싸우고, 그러다가도 '말뚝박기' 한 판이면 어느새 웃으며 다시 합류하는 아이들 아니던가.
아이들은 멍 위에 또 멍이 들어도, 머리칼에서 쉬 쌓인 먼지가 툭툭 떨어져도, 걱정되는 건 오직 엄마에게 혼날 더럽혀진 옷이다. 누군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뒤늦게 듣고선 "어, 벌써 저녁이야?" 하며 운동장을 뛰쳐나가면 그제야 게임이 끝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지치지도 않는 그때 우리들은 함께 무너지지 않겠다는, 버티는 인내심과 연대감을 느꼈던 것 같다. 연신 땀을 닦으면서도 다시 등 위로 오르겠다고 달려들고, 다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친 곳에 피딱지가 앉아도 가려워 긁어 떼어내는 귀찮은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친 곳에 사치를 부리자면 연고를 발라주는 정도? 그때 우린 참 단단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 98년도 여고생일 때도 친구들끼리 야자시간 전 저녁 먹고 이러고 놀았어요.(히히)
(너무 추운 한파가 계속되니, 어릴 때 땀 쏟으며 즐긴 한여름 놀이를 소환했습니다)
**사진은 후포리마을 벽화 사진입니다(상업적 사용가능까지 열려있어서 퍼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