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파랗고 싱싱한 날들
탐났는데 매웠지
숨도 못 쉬게 헛기침 나올 만큼
그저
내 손이 매워진 줄도 모르고
한 뿌리 한 뿌리 다듬었지
소금 무게 재듯 조심스레
빛나는 너의 결을 따라 쓸어내리며
너와 나, 날것의 시간을 묻었어
처음엔 서늘하고 낯설었지
입 안에서 사각거리는 파란 날것
가끔은 쓰라린 매운맛에 눈물도 났어
하루는 주방 바닥에 앉아
김치통 속 고여 있는 네 속삭임을 들었어
발효하는 시간 속 미세한 거품소리
재촉하지 않았어
성급한 젓가락질로 너를 깨우지 않았지
숨이 고르게 죽기를 기다리고
속살이 천천히 익어가길 바랐어
어느 날 문득
뚜껑을 열었을 때
내 삶의 모든 빈자리에
꼭 맞는 사람이 되어 있었지
익고 나니,
다른 어떤 식탁에도 내어놓기 싫은 사람
이건 우연이 아니야
가장 좋은 재료를 알아본 내 직감이 있었고
그 재료로 내 것을 만들고 싶은 의지가 있었고
우리 사이에 흐른 계절들이 있었지
무엇보다
서두르지 않은
나의 기다림이 있었고,
너는 보답하듯
기다리는 나의 시간에
너의 진심을 발효시켰어
지금 당신은
묵은지처럼
편안하고 깊은 여운으로
혀끝에 남는 그리움
먹다 남길 수 없는 사람
왜 그렇게 오래 곁에 두었느냐고
누가 묻거든
말할 거야
익으니까
비로소 내 것이더라고
지금도 당신은
내 주방 은밀한 곳에서
가장 아끼는 반찬통 속에서
묵묵히 익어가는 중이겠지
맛있게 익은 대파김치를 먹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