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와인과 낭만의 도시 트빌리시에서

(조지아 2025.08.21)

by JumongTV

어제 우리는 한국에서 아침 8시에 인천공항에 집결해 11시 10분 비행기로 알마티로 향했다(14시 05분 도착). 알마티에서는 18시 10분에 출발하여 21시 20분경 트빌리시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이동만 한 셈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침 일찍 ‘다비드 가레지 수도원’ 출발을 앞두고 호텔 로비에 모였는데, 일행 중 한 분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예기치 못한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계셔서 응급 처치가 가능하였다. 모두의 바람 덕분인지 쓰러졌던 분은 곧바로 회복했다. 저혈당 쇼크였다. 어제, 새벽부터의 긴 이동에 체력 안배가 어려웠던 듯하다. 이런 순간, 의사 선생님과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쓰러진 분은 회복되었지만 정상적인 일정 소화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그녀와 룸메이트,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은 호텔에 남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들은 시내 관광을 떠났다. 환자는 함께 남은 친구가 돌보기로 했고, 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 대기하기로 한 것이다.
룸으로 올라가 창밖을 바라보니 커다란 수영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투숙객 몇 명이 길게 놓인 선텐용 베드에 누워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새파란 물, 새하얀 파라솔, 태닝을 즐기는 사람들… 참 아름다운 이국적인 풍경이다. 여유를 가지니 비로소 또 다른 풍경이 보였다. 조용한 감동을 뒤로하고 책 한 권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파라솔 아래에서 나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트빌리시 호텔 수영장에서의 망중한>

금발의 미녀는 가슴 벅찬 비키니에 자태를 뽐내고,
수영장에서는 아이들이 물장구에 수영 삼매경이다.

위로는 흰 구름이 두둥실 유려히 떠다니고,
고즈넉한 이국의 풍경 속으로 나는 빠져든다.

이 멋진 수영장을 즐기기 위해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코카서스까지 날아왔나 보다.

화창한 날씨, 뜨거운 햇빛 아래 이 평화로운 순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그 일행의 마음은 어떠할까.

참새 한 마리가 옆 화분에 내려앉고,
풍경에 취한 책장은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오늘 가지 못한 가레지 수도원과 트빌리시에 대하여

다비드 가레지 수도원 (David Gareji Monastery)

트빌리시 남동쪽 약 70km,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아르메니아 국경과 맞닿아 있어 트레킹 시에는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
6세기, 시리아 13인의 수도사 중 한 명인 성 다비드가 창설했으며 이후 수많은 동굴 수도원과 성당으로 확장되었다. 산맥을 깎아 만든 동굴·벽화 등이 조지아 정교회가 가진 소중한 종교·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역사적 가치와 장대한 자연경관 덕분에 많은 여행자가 찾는 곳이다.


와인의 도시, 트빌리시

트빌리시는 5세기 이베리아 왕국의 왕 고르가살리에 의해 건설된 유서 깊은 도시이다. 고르가살리는 비잔틴 제국과 동맹을 맺고 페르시아에 맞서 독립과 신앙을 위해 싸웠던 인물로, 재위 기간은 443년~502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냥 후 귀환하던 길에 온천에서 목욕하던 사슴을 보고 그 신성함에 감동하여 수도를 기존 므츠헤타에서 트빌리시로 옮겼다고 한다. ‘트빌리시’라는 말은 ‘따뜻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이 도시는 오랜 세월 외침과 전쟁의 길을 걸어야 했다.
6세기말부터 동로마와 페르시아의 전장이 되었고, 이베리아 왕조는 멸망했다. 이후 비잔틴과 페르시아가 조지아를 분할 통치했고, 8세기 후반부터는 아랍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아랍은 교역과 과학이 발달한 문명이었기에 트빌리시는 어느 정도 번영을 얻었지만, 그 이후에도 셀주크 투르크, 몽골, 티무르 제국, 오스만 투르크, 러시아 제국, 소련 등 수많은 외세의 지배를 겪었다.

이 질곡의 역사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와도 묘하게 겹쳐 보인다.
한국은 끊임없는 외침 속에서 강한 생존 의지와 ‘해내고야 마는 성향’을 키워 왔다. 조지아 인들에게서는 겉으로 보기엔 다소 느긋하고 낙천적인 모습이 먼저 보이지만, 그들의 역사 속에는 분명 강인한 정신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때론 오랜 수난의 시대가 사람들의 기개를 퇴색시키기도 했겠지만, 그들의 삶에도 행운과 평화가 함께하길 바랄 뿐이다.

현재의 트빌리시는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로, 서울과 비슷한 듯 보이지만 시각적인 느낌의 층은 완전히 다르다. 이는 아마도 동양과 서양의 문화·지리·정서의 차이에서 기인한 탓 일 것이다.

트빌리시는 다민족 도시로 인구 약 124만 명 중 조지아인 89%, 아르메니아인 4%, 러시아인 1% 정도가 각각의 종교 구역을 중심으로 모여 산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아르메니아인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조지아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러시아 제국 시대에는 ‘티플리스(Tiflis)’로 불렸으며, 온천과 교회 등 다양한 역사 유산 덕분에 많은 여행객이 찾는다.

a조지아44-1.jpg
a조지아38-1.jpg
a조지아48.jpg
a조지아39.jpg
a조지아46-1.jpg
a조지아45.jpg
a조지아40.jpg
a조지아37.jpg
a조지아47.jpg


동영상 : 와인의 도시 트빌리시 (조지아)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향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