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째(9월 11일)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고선지 장군
어제는 타슈켄트의 관광지를 들러 보았다. 이렇다 할 감흥이 없어 글로 다루지 않기로 한다. 현재의 타슈켄트는 유적지보다는 현대화된 도시의 성격이 강하다. 마치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 같은 느낌이다. 관광지로 재래시장과 이슬람 사원 그리고 티무르광장, 브로드웨이, 박물관등이 있다. 하지만 부하라, 사마라칸트, 히바등 유적지를 돌고 타슈켄트에 오면 관광지로서 만족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어떤 관광을 즐기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필자에게 우즈베키스탄은 다른 주변국가와 달리 역사적 유산이 있는 나라이기에 유적지에 포인트가 맞추어져 있다. 타슈켄트를 역사적으로 연결시키고자 자료를 뒤척이다 보니 과거 고구려 후손인 고선지 장군이 떠올랐다. 한국인으로서 관심이 있을법한 고선지 장군과 타슈켄트와 관련하여 또 다른 접근법으로 들여다 보고자 한다.
타슈켄트는 8세기 고선지 장군이 활약할 무렵 석국(石國)이었다. 고선지 장군이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을 때 서역에서는 이슬람 왕조가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었다. 이때 석국이 이슬람 왕조에 치우치자 당나라 장수 고선지는 석국 정복에 나선다. 그리고 석국의 왕 투둔을 체포하여 장안으로 보내게 된다. 이로서 중앙아시아는 평정이 되었다. 그런데 석국의 왕이 처형당했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이에 석국의 왕 토둔의 아들이 탈출하여 서쪽의 이슬람 강국 아바스왕조에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로서 이슬람과 당나라가 최초로 전쟁을 탈라스에서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 전쟁에서 고선지는 지원군으로 오기로 하였던 동맹국 카를룩이 오지 않는 배신으로 참패를 당하게 된다. 전쟁에 패하면서 그때 끌려간 전쟁 포로 기술자들로부터 다양한 당나라의 선진 기법등이 서역으로 전해지게 된다. 이때부터 석국을 포함한 중앙아시아는 아바스 왕조의 영향으로 급격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고 당나라는 서역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참고로 탈라스는 키르기스스탄 북부에서 발원하여 카자흐스탄 남부로 흐르는 강의 이름이다. 키리기즈스탄 남부에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고선지 장군은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고선지 장군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당나라로 갔다. 유민 출신인 그가 어떻게 장군이 되었을까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그에 대하여 고찰하여보고자 한다. 그는 어렸던 만큼 언어를 빨리 습득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표면상으로는 그가 고구려 유민 집안이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힌 당나라 문화를 통하여 그가 성공 가도를 달리데에는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가 활약한 당시는 당나라로 현종이 지배할 시기이다. 현종이 초기에는 성군이었지만 후기에는 양귀비의 미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문란한 시기를 보냈다. 이는 탈라스 전투의 패배와 안사의 난 등을 거치며 급격히 당나라 국운이 기울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현종은 선비족이라는 북방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배계층인 북방계는 유목 부족으로 인구가 적다. 인구가 적은 지배계층에서 절대다수의 피지배계층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관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쟁 포로라 하더라도 항복만 하면 관용을 베풀고 능력이 있으면 벼슬도 가능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는 훗날 칭기즈칸의 시대에도 그리고 그의 후손이 지배하였던 원나라 때에도 여실히 잘 드러난다. 이러한 이민족에 관대한 정책 탓에 중앙아시아 출신인 이백이 시선(詩仙)이라 불리며 문인으로 명성을 떨칠 수도 있었고 고구려인으로 분류되는 고선지도 상류층의 자리까지도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대신에 이민족 출신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류층에 환심을 사야 하기에 뇌물등을 많이 받쳐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선지 장군에 관한 기록 중에 전리품을 많이 챙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곧 수많은 전리품이 자신의 성공가도를 위한 뇌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방증(傍證)함이 아닐까 한다.
오늘은 우즈베키스탄의 마지막 일정으로 한인식당과 한인교포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이동을 하고자 한다. 이동을 하여야 하는데 아직 택시 잡는 법의 어플 이용법등 모든 면에서 서툴다. 그래도 혼자 움직여 보련다. 마음 다잡고 어제 사온 생수를 들이켰다. 킥! 컥컥!! 무슨 이온 음료 비슷한 맛이다. 어제 편의점에서 물 같아서 세병 들고 왔는데 생수가 아니었다. 이런 낭패가.. 갑자기, 20대 때 호주(Australia)에서 살았는데 그때 들었던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느 이민자가 영어를 모른 상태에서 슈퍼에 갔는데 시리얼 모양의 스낵과 예쁜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 과자 봉투가 있었다 한다. 포장 그림은 브랜드 관련으로 생각하고 집에 와서 우유에 타서 먹었었는데 맛이 영 까칠하더라는 것이다. 이후 알고 봤더니 새 먹이었던 것이다. 당시 90년도이니 한국에서는 슈퍼에서 새 먹이를 팔지 않았던 것 같다. 난 그래도 새 먹이에 비하면 양호하다. 그래도 마실 수 있는 음료를 골랐으니 말이다.
택시를 타고 한국인이 모여 산다는 타운에 도착하였다. 약속 시간보다 이른 시간인지라 한식당 알아보고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식당에서 컴퓨터에 열중인 한분이 등을 보이고 앉아있다. 사장인 듯했다. 직원을 불러 사장님과 대화 요청을 하였다. 인사 올리고 간단한 나의 소계를 하였다. 제가 30년 만에 이곳에 왔습니다. 제가 그때 모 회사에서 파견되었던 주재원이었습니다. 말 꺼내자 당시의 분위기를 다 아시는 눈치다. 그러면서 본인이 당시에 모회사 재무 간부 출신이었다고 했다. 그때 같이 근무했던 사람 열거하니 다 알고 있었다. 당시 나보다 2살 많았던 김 아무개 씨는 상무이사까지 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친하다며 바로 전화로 연결시켜 주었다. 그는 회사를 이미 퇴사하였고 한국으로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자신의 사업을 하고 았다고 하였다. 내심 나는 당시 낙하산 인사로 잠시 파견 나왔었기에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였다. 설령 기억 하더라도 좋지 않은 방향이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전화를 바꿔주셨다. 그는 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헛.. 헛.. 반가움 뒤로하고 방문 목적 설명하고 이번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고 하니 차기 방문할 때 만나기로 하였다. 당시 러시아에서 갓 독립한 우즈벡은 많은 면에서 열악하였다. 그 열악했던 이곳에서 자리 잡고 잘 살고 있었다. 식당 사장과 유쾌한 대화를 뒤로하고 이동하여 약속한 현지 여행사 대표를 만났다. 물류와 여행업을 동시에 하는 업체였다. 방문 목적 설명하고 좀 전의 그분 이야기하니 본인과도 호형호재하는 사이고 회사도 자주 들른다고 하였다. 세상이 좁다. 교민 사회는 더욱 좁다. 30년 전 추억이 현실로 그것도 바로 연결되어 버린다. 세상은 둥글다. 돌고 돌고 또 돌고 하다 보면 다 연결된다. 그러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도 돌고 돌면서 중앙아시아 3국 투어 최종일도 무사히 지나갔다. 긴 시간이었던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3개국을 건너 다니다 보니 촉박한 일정 탓에 긴장의 연속이었다. 차량, 사진, 동영상, 메모, 여행사 사장들과의 미팅 등등 모든 일정은 혼자서 다 챙겨야 하는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이번 중앙아시아 탐방은 총 18편의 기행문으로 완성시켰다. 쉽지만은 않았다. 오타는 찾아도 찾아도 계속 나오는 등 장시간 컴퓨터 앞에서 집중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마무리 : 중앙아시아인들은 말에서 한번 내려오면 다시 오르려 하지 않았다. 정주족의 삶을 경험한 그들은 더 이상 유목민임을 거부하였다. 종교도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혼혈하며 그들만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유목민 출신인 그들이지만 현재에도 유목국가 성향이 강한 몽골과의 이질감은 더하여졌다. 물론 몽골도 현재는 도시인을 동경하여 유목민의 자녀들이 속속히 도시로 유입되고 있다. 유목민의 정주화의 속도에 몽골이 이제야 뒤차를 타고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편리를 추구한다. 문명의 이기가 충만한 현대화된 건물에 살면서 유목민들에게만 전통을 고수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삶과 관련하여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단 차이를 느끼고 싶어서 여행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제목도 '문턱 넘어 노마드(유목민)'로 한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루트, 칭기즈칸 루트, 유르트(게르) 컨넥션 이러한 접근법으로 그들의 문화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는 표현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서 위대하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출발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엮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국에 가거든 최대한 잘 엮을 것이다. 한국과 중앙아시아가 더욱 가까워지기를 희망하며 여기서 이번 투어를 최종 마무리한다.
카자흐스탄, 키리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도움 주신 현지 관계자 여러분과 장문의 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모두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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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