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몽골가자

수계혼과 형사취수제

by JumongTV

소수 가족연합 부족의 부족장 에수게이는 어린 태무친을 장가보내기 위하여 신부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타타르족에 독살을 당한다.

당시에는 남자가 장가들기 위하여 신부집에서 몇 년 살다 오는 게 풍속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구려의 "서옥제"와도 비슷한 개념이다.

죽기 직전에 아버지의 보고 싶다는 전갈을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부족장이었던 아버지가 죽자 타이치우드족의 배신으로 테무친 가족만 숲에 남게 되었다.

어린 테무친 형제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어머니 후엘룬은 풀뿌리며 들쥐며 닥치는 대로 거둬들였다.

그림자 말고는 동무도 없고 말꼬리 말고는 채찍도 없는 그때 테무친은 이복형 벡테르를 친동생 카사르와 함께 화살을 당겨 죽여 버렸다.

그걸 알아차린 어머니는 심하게 테무친과 카사르를 나무란다.

몽골비사에 심하게 야단치는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제 형제를 죽인 놈들!

내 뜨거운 곳에서 힘차게 나올 때 이놈이 제 손에 검은 핏덩어리를 쥐고 태어났다.

제 모태를 물어뜯는 카사르 개처럼, 바위에 덤벼드는 표범처럼, 제 분을 누르지 못하는 사자처럼, 산채로 삼키려는 망고스처럼, 제 그림자에 덤벼드는 송골매처럼, 소리 없이 삼키는 꼬치고기처럼, 제 새끼의 뒤꿈치를 물어뜯는 수낙타처럼, 눈보라 속에서 밀려드는 이리처럼, 제 새끼를 쫓아내다 못해 잡아먹는 원앙처럼, 소굴을 건드리면 떼 지어 덤벼드는 승냥이처럼, 잡아서 길들일 수 없는 호랑이처럼, 이유 없이 덤벼드는 바룩개처럼 제형제를 죽였다." - 몽골비사 中 -



테무친은 왜 이복형을 죽였을까?

다수의 책 내용에 의하면 이복형 벡테르가 먹을 것이 귀한 때에 혼자 많이 먹고 사냥감도 빼앗아가고 하면서 얄미운 행동을 많이 하였던 걸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계획적으로 죽였다.

위의 몽골비사의 내용처럼 어머니는 자신의 친아들에게 거의 분노에 가까울 정도로 모질게 야단을 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당시 몽골에는 형사취수제와 비슷한 수계혼이라는 것이 있었다.

수계혼이란 아버지가 죽으면 친어머니가 아닌 계모는 자연스럽게 큰아들이 물려받는 제도이다.

즉, 어머니 호엘룬 입장에서 보면은 친자식이 아닌 큰아들 벡테르가 자신의 남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남편감을 친아들이 죽여서 그리 심하게 야단쳤던 부분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강한 성질의 테무친 입장에서 보면은 얄미운 형을 양아버지로 섬길 엄두가 나지 않았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테무친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상황이지 않았을까 생각하여 본다.


형사취수란 형이 죽으면 그 형의 부인을 다시 동생이 부인으로 맞는 제도이다.

미개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옛날 유목민 입장에서 보자면 여자도 곧 재산이었다.

일반적으로 형이 죽으면 그 재산은 형수가 혹은 그 자식들이 물려받게 된다.

형의 사후 형의 부인이 재산을 물려받은 상태에서 재혼을 하면은 그 재산은 남의 것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동생이 형수를 부인으로 맞아들이면 재산을 잃지 않는다.

즉, 재산을 지키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조금은 유사한 사례가 있다.

고구려의 데릴사위제인데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여자집에 가서 살면서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여자가 임신을 하고 아이가 장성하면 분가를 하던가 아니면 양자로 입적을 한다.

부족한 노동력을 대신하여 주고 귀한 딸을 데리고 오는 풍습이다.

고대 일본에도 딸만 있는 집안에 데릴사위가 들어가 대를 잇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몽골도 옛날에는 지금처럼 부계 중심이 아닌 모계 중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역발상이 떠오른다.

지역과 국가를 떠나 예나 지금이나 재산 보호하기 위한 수단은 참으로 지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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