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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모카 Jun 04. 2019

영화 <기생충>

선을 넘는 순간 질서는 무너진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동네 극장이 아닌, 칸에서 봤다면 나 역시 8분간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동네에선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기에 그저 같이 본 사람과 서로 “괜찮다, 좋다”라는 말만 하고 나왔다. 밥을 먹으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실 다른 생각이 들었다. 주된 감정은 씁쓸함이었다.     



대략 큰 줄거리는 이렇다. 백수 가족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부잣집에 고액과외를 하러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살면서 전혀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하지만 사실 그건 시작은 우연이었을지라도 그 후의 일은 우연이 아니다. 백수 가족이 철저히 계획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가족은 희비극이 아닌 잔혹극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계획을 하고 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처음엔 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박사장(이선균)네 가족에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거짓으로 무장하고 온 기택(송강호) 가족이 스멀스멀 보란 듯이 침입해오는 게 싫었다. 그건 당혹이나 당황을 넘어 불편함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인 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뒤에 백수 가족에 감정이입이 된 적도 있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 가족 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래서, 나와는 별개라고 좀 떨어져서 보다가 어느덧 그들 중 누군가와는 겹치는 모습을 발견하곤 씁쓸함이 느껴졌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포인트. 같은 장소에 있어서 섞여 있는 듯 보여도 두 가족을 정확히 선 긋게 만드는 것, 바로 냄새다. 어디선가 나는 불쾌한 냄새.     


시각이나 청각은 인지하는 순간 바로 알아챈다, 정체가 무엇인지. 하지만 후각은 다르다. 처음엔 모르다가 어느 순간 조금씩 코에 자극이 가면서 이게 뭔가 싶다. 그러다 확 느끼게 된다. 좋은 냄새인지, 나쁜 냄새인지 알게 되는 순간 확 거리를 둔다. 맡은 사람도 불쾌하지만, 냄새 제공자도 민망하고 자신을 피하는 상대의 행동으로 순간 한없이 초라해지고 쪼그라드는 자신을 마주하면 기분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으로 치닫는다.     


박사장 부인 연교(조여정)가 미술과외선생 기정(박소담)과 친해진 것처럼 살짝 말을 놓는 순간이 있다. 누군지 몰라 거리를 둬야 하는 경계인에서 아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으로 바뀌어 선을 넘어온 순간. 박사장도 차 안에서 운전기사 기택과 대화를 하면서 살짝 편안해진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스멀스멀 냄새가 그 공간을 가로질러 선을 긋게 한다. 불쾌함을 주는 것이다. 너와 나는 다르다고. 친한 척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그 선은 무엇 때문에 긋게 되는 걸까. 왜 그들은 애초에 다른 걸까. 기택의 부인(장혜진)이 말하는 구김살을 펴준다는 돈. 그것 때문일까.      




박사장네 가사도우미(이정은)가 본모습을 보이기 전, 그녀의 헤어와 의상은 귀부인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못지않다. 이건 기택의 부인이 가정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반지하에 살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녀들도 옷이 날개, 꾸미면 사모님 같아진다. 이것이 돈이 가진 힘인가.


하지만 기택이 젠틀한 척 운전을 하다가 다른 차가 끼어들어 사고가 날 뻔하자, 그의 입에선 평소에 쓰던 욕이 확 튀어나온다. 옷으로는 숨길 수 없는 본모습이 있다. 그럼 그 본모습은 또 어디에서 나왔을까. 부부가 서로 존중하지 않는 가정환경, 구김살을 펼 수 없는 부모의 경제력, 돈 몇 푼에도 험상궂게 변해버리는 어쩔 수 없는 빈곤, 학위위조 증명서를 보면서 감탄하는 부모의 모습...  그런 것들이다. 그럼 이 또한 결국 돈인 건가. 그들이 선택할 수 없었던 금수저와 흙수저만이 놓인 애초에 다른 식탁.     




영화를 보면서 그들은 공생할 수 없다, 애초에 만나지 않았어야 한다, 우연으로 엮여도 선을 명확히 긋는 것이 낫다, 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두 가족 모두 잔혹극이 되어버리니까. 선을 넘지 않았다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럼 질서가 잡혔을까. 그 질서라는 것이 결국 보이지 않는, 혹은 확연히 보이되 그저 무심히 모른 척해버리는 신분 혹은 계급의 질서라는 것이 씁쓸하다. 공생하는 척 보이지만, 결국 공생하면 곤란해지는 이 시대의 질서.     


영화에 나오는 모든 가족은 끈끈하다. 분명 악한 행동을 하면서도 가족끼리는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한다. 빈곤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다. 어쩜 그리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그 가족들이 나와 별개로 느껴지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선이 그어져 있든 어떻든 내 가족도 너의 가족과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고 말하기 때문에.     


분명 인간인데, 존엄한 인간인데.. 말이다. 왜 자꾸 바퀴벌레처럼 행동하는가. 왜 돈을 많이 가진 자 앞에서 벌레로 변해버리는가. 숨고 도망가고. 초라한 기택의 어깨는 그래서 마음까지 무겁게 한다. 죄를 지었기에 숨는 걸까? 만약 죄를 짓지 않았다면?그가, 혹은 그들이 박사장네 가족에게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럼 당당해질 수 있을까?

  

마지막에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의 편지에 쓰여있는 그가 바라는 꿈. 돈을 많이 벌어 박사장의 집을 사서 당당히 그 집에 입성하는 것. 정말 그 집이 자신의 집이 되는 것. 잠시 머물고 사는 척하는 게 아니라, 소유자가 자신의 이름인 집. 누가 와도 당당하게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집.


아...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꿈조차 희망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한없이 씁쓸하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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