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이 아쉬움 많은 노래가
하늘에 닿기를
눈물 속에 밤새운 내 기도가
마음에 닿기를
몇 달 전, 초등학생 아들이 가사가 빼곡히 적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학예회 때 부르기로 했다며, 같이 하기로 한 친구들이 고른 노래인데, 워너원의 뷰티풀이란다.
가요를 듣지 않는 아들은 워너원이 누군지도 몰랐고, 노래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 한 명이 가사를 외우라며 줬다고 했다. 가사를 본 내가 한 첫마디는 이거였다. “길다. 너 이거 다 외울 수 있겠어?”
며칠 뒤, 아들은 노래의 반 정도만 외워서 대충 입만 뻐끔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그런 후 그 노래가 좋다고 계속 듣더니, 지금은 다 외워버렸다. 그런데 노래를 계속 따라 부르다 보니, 여섯 살인 둘째 아들도 어느 날부턴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프지 마 울지 마 널 향한 노래가
들린다면 다시 돌아와
Oh 그리워 그리워
거울 속에 혼자 서있는 모습이
낯설어 두려워 네가 필요해
그리워~ 그리워~ 하고 부르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러다 문득 이 아이가 저 말을 알까 싶어, 물어보았다.
“그립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
“몰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모른다는 대답이 나왔다. 가사야 어찌 됐든 그냥 음이 좋아 형이 하는 걸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차 궁금하지도 않은 눈치였다.
그립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아련하고 애틋한 느낌.
어른인 나는 많은 단어의 느낌을 알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나도 모르는 감정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떤 느낌인지는 대략 알지만 겪어보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는 감정들.
예를 들어, 부모를 잃었을 때의 슬픔, 믿었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고 느끼는 배신감.. 뭐 이런 것 말이다. 그 슬픔이란 흔히 말하는 뼈를 깎는 아픔 같은 것일까. 내가 어렴풋이 그 깊이를 예측하는 감정들은 실상 겪어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수많은 감정들 중에서 내가 정확히 아는 감정들은 몇이나 될까.
사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모두 제각각이니까 정확한 감정이란 건 없을 것이다. 하나로 불리는 단어에 폭넓은 깊이만이 있을 뿐.
우리는 늘 같은 말로 이름 붙인 감정을 가지고도 매 순간 다양하게 느끼며 산다.
0과 1 사이에 수없이 많은 숫자들이 숨어있는 것처럼. 문득 많은 감정들을 미세한 차이 나마 다양하게 느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색과 형태를 알면, 일상에서도 남보다 그런 것들이 더 잘 보인다고 한다. 타인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색들이 내 눈엔 더 잘 구분지어서 보이는 것이다. 파랑이라고 불리는 색이 다 같은 파랑이 아니듯이.
감정도 그럴까? 지금 이 순간의 내 감정을 생각해보면, 이건 왜 이런지,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느 정도의 농도인지 알 수 있을까? 그럼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