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찾는 길.

by 허니모카

도서관에서 ‘색연필화’ 무료 수업을 한다고 해서 들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반~12시, 10회 수업.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즐겁게 수업을 마치고, 다음 주부터는 그 선생님의 화실에서 기초부터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 (선생님은 꾸준히 전시회를 여는 서양화가다.) 글을 쓸 때, 그림도 같이 곁들일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망설임 없이 일주일 중 하루, 오전 2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약간 어색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호칭이다. 선생님이 나를, 그 수업에 참여했던 나머지 19명 모두를 부르는 호칭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다.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서로를 ‘선생님’으로 부른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영 어색하고 이상했다. 내가 선생님을 가르친 선생님도 아니고, 선생님보다 한참 인생선배도 아닌데, 선생님이라니(내가 3살 많긴 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호칭에 몸 둘 바를 몰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 호칭 말고요, 다른 걸로 불러주세요. 이를 테면, ○○○ 이런 거?” 하고 말할만한 게 없었다. 대안이 없는 거다. ‘○○씨’도 웃기고, ‘저기요’도 웃기다. ‘저기요’는 낯선 이에게 길을 물을 때 불러 세우는 호칭 아닌가.

어디서나 통하는 ‘언니’라는 호칭도 있다. 대개 물건 사러 갔을 때, “사장님”을 찾기도 하지만, “언니”를 부르기도 한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려도 그냥 언니다. 하지만 나이불문 장소불문 어디서나 통하는 편한 호칭이라도, 배우는 입장에서 '언니'로 불러달라고 할 순 없다.


선생님 말고 또 호칭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자기”.

바야흐로 20대 초반, 대학생 때. 부르고 들을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호칭은 ‘학생’, ‘선배’, ‘이름’ ‘언니’였다. 그런데 ‘자기’라니. 같은 과 선배였던 30대의 직장인 언니가 처음 보는 자리에서 나를 “자기”라고 불렀다. 내가 머쓱해서 자꾸 웃으니까, 어려서 몰라 그렇지 많이들 쓴다고 말했다.

그땐 영 이해가 안 됐지만, 그 후 십 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부턴가 나도 그 말을 쓴다. 아주 가끔.

아들의 친구 엄마가 나보다 어릴 때,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다. ‘자기’ 말고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그냥 ‘언니’로 통하는데, 나보다 적으면 ‘야’로 부를 수도 없고, 이름을 부르기도 어색해서 찾은 말이 ‘자기’다.



요즘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실 ‘이름’이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육아휴직을 거쳐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부터는 이름이 사라졌다. 그냥 ‘○○엄마’로 통한다. 새로 알게 된 관계는 거의 대부분이 아들의 친구 엄마들뿐이니 그냥 누구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이제 사라져 가는 내 이름을 찾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나를 대변하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그래서 오늘도 늦은 밤, 끊임없이 생각을 다듬어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음악 자체가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