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스며드는 강력함

by 허니모카

어제는 종일 비가 오더니, 오늘은 종일 햇빛이 비쳤다.


어제 오후,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나 안 오나 보려고. 창가에 바짝 붙어서 본 건 아니고, 좀 떨어져서 슬쩍. 비가 오지 않는 것 같아 몇 걸음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고 걷고 있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지도 않고, 서둘러 뛰지도 않는 걸 보니 비가 그친 모양이었다.


빈손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주차장을 벗어나자마자,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토독토독. 언뜻 봐선 보이지 않지만, 머리에 닿는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비.


자세히 봤더니, 가느다란 비가 무수히 많이 내리고 있었다. 소리 없이 조용히. 그냥 맞고 갈까, 돌아가서 우산을 가져올까 망설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유치원이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서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래도 우산이 필요할 듯싶었다. 아침에 보낸 아이의 작은 우산을 같이 쓰기엔 무리고, 그대로 비를 맞자니 생각보다 많이 젖을 듯싶었다.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면서 우산을 접으며 툭툭 물기를 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 이런 비와 같은 것이 또 있을까.


너무 사소해서 보이지 않지만, 유심히 보면 알 수 있고, 시간의해 그 양이 많아져 힘이 강해지는 것.


내가 아이에게, 남편에게, 타인에게 했던 말들과 행동들을 떠올렸다. 무심히던진 말, 내 기분에 의해 상대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해버린 말, 찡그린 인상 등 어쩌면 사소하지만, 사소하지만은 않은 것들. 그런 것들이 쌓이면 상대의 기분도 좋지 않을 것이다.


머리 위에 살짝 묻은 몇 개의 빗방울은 손으로 툭툭 털면 없어지고 말지만, 아주 살짝 내려도 오래 맞은 비는 머리카락을 온통 젖게 한다. 눅눅하고 찝찝하게.


그러지 말아야겠다.

예쁜 말과 예쁜 행동만 해야겠다, 생각한 날이었다.



집으로 와서 아이에게 자두를 내주고, 커피를 마셨다.


나로 인해 상대방의 머리에 닿는 것이 비가 아닌 부드럽고 따뜻한 햇살이면 좋겠구나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