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꽤나 기다렸었다. 1회의 첫 장면을 보자마자 와... 400억이 저런 영상을 만드는구나 감탄하며, 영화야 드라마야.. 눈이 땡글 해져서 영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곧 살짝 지루해졌고, 소파에 앉아 집중하며 보기보다는 뭐 먹을 거 없나 냉장고 문을 열고, 거실에 어질러놓은 물건들도 제자리를 찾아주며 드라마를 봤다. 그러는 사이 1회가 끝나버렸다. 2회가 썩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 작가님 죄송합니다.) 그 후 3,4회는 몰아서 봤는데.. 그래도 김은숙 작가의 다른 드라마처럼 심쿵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느낌을 받을 순 없었다.
‘시크릿 가든’은 우연히 4회를 처음 보고 뛰는 심장을 다독여가며 1회부터 다시 봤다. ‘태양의 후예’나 ‘도깨비’도 초반부터 흠뻑 빠져들었고, 나머지 작품들 역시 거의 비슷했다. ‘신사의 품격’도 ‘상속자들’도 ‘파리의 연인’도.. 일일이 열거하면 입이 아프다.
김은숙 작가가 글을 쓰는 동안 힘들었다는 ‘시티홀’도 좋았다. 아, 조국 멋있었지. 텐트 안에서 각자 모로 누워 잠든 척했던 조국(차승원)과 신미래(김선아)가 생각난다.
어쨌든 ‘미스터 션샤인’으로 돌아와서.
이 드라마는 로맨스만으로도 이야기 전체를 끌어가는 작가의 기존 드라마와 매우 다르다. 구한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의병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우리의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의 성격과 역할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시피 한다. 낭만이 그들 주위를 맴돌지만, 더 심쿵하길 원했기에 격변의 시대가 LTE급 설렘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4회다. 24부작이라서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발음이 들리지 않는다, 나이차가 많아 안 어울린다, 친일 논란, 역사왜곡 등 안 좋은 평도 있지만 차차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서론이 길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드라마의 리뷰 때문이 아니다.
1회가 기대에 살짝 못 미쳤을 때, 김은숙 작가가 떠올랐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시청률이 나오고, 사람들의 댓글이 우르르 달리고, 기사들이 쏟아질 때, 작가는 어떤 기분일까. 다음 작품은 어떤 걸 쓸까.
가장 잘할 수 있는 오글거리는 대사가 가득한 로맨스 드라마로 돌아올까. 아니면 이 드라마처럼 해보지 않은 새로운 드라마로 돌아올까.
24부작을 끝냈을 때, 이 드라마의 끝이 어떤 평을 가지고 올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태양의 후예’나 ‘도깨비’보다는 호평이 덜 한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고민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쉬운 길을 갈까, 어려운 길을 갈까.
드라마 영화 대본을 올려놓는 여러 카페에서, 작가의 대본을 본 적이 있다. 잘생긴 배우가 없어도, 화려한 영상이 없어도 너무 재밌었다. 글자 한 톨, 한 톨이 마치 밥알처럼 톡톡 씹히고 찰지고 깔끔했다. 신기하게 지문마저도 대사 같은 맛이 있었다. 작가의 모든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머물러 있으면 발전이 없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두려울 수밖에 없다. 타인의 기대가 크면 클수록. 하지만 그 시도는 결코 제자리걸음이 아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시도에 후퇴란 없다.
창의적인 일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건 무엇보다 자신의 틀을 깨는 것이다. 아예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지만, 내가 가진 성향 자체를 깨부수는 건 너무 어렵다. 벗어나고 벗어나도 부처님 손바닥 안인 것이다. 나와 성향이 전혀 다른 것들을 많이 보고 느끼고 접하고, 혹은 따라 해 보아도 결국은 내가 묻어나게 되어있다.
변화는 계단을 올라가듯 한 계단, 두 계단 천천히 올라 그 폭이 좁다. 한 번에 훌쩍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듯 전망대로 갈 수가 없다. 그러니 계속 시도해야 한다. 그 성과의 폭이 눈에 보일만큼 점차 커지도록. 그런 시도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손바닥쯤은 훌쩍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길 바란다. 혹평에도 꿋꿋이.
김은숙 작가가 어떤 작품으로 돌아오든, 응원한다. 물론 로맨스가 가득한 심쿵 작품을 써주면 너무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지켜볼 것이다. 머물러 있지 않고 나아가는 작가의 필력을 기대, 또 기대해본다. 그리고 응원한다.
언제라도 박수칠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