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는데, 갈 때마다 보는 언니가 있다. 매우 열심히, 체계적으로 운동을 한다.
반면 난 늘 아주 간소히 하고 온다. 슬렁슬렁까진 아니지만, 최소한의 할 만큼만 하고 온다. 그래서 근력이 없는 건가. 더 해야 하는데..
그 언니가 오늘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더워서 힘들다고, 운동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그런가? 자기와의 싸움. 배드민턴이나 야구처럼 누군가와 같이 하는 운동은 재미라도 있지. 기계 위에 올라가 시간 맞춰 걷는 건 재미가 없단다. 그러네, 맞네.
난 이미 재미니 뭐니 그런 건 생각지도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 자기와의 싸움을 생각할 만한 고지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에 화실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그림 그리는 건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이건 화가들의 경우겠지. 난 음료수 캔, 사과 이런 단순한 소묘를 하니. 아주 즐겁게 한다만..
가만히 앉아서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 그건 친구를 만나고 싶고, 놀고 싶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하는 행동이다.
좋아하는 일이고 즐거워도, 오랜 시간 투자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은 힘들 수밖에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에겐 그런 게 뭐가 있을까 사소한 것부터 떠올려봤다.
늦은 밤, 영화를 보면서 간단하게 맥주 한 캔과 스낵을 먹고 싶은 욕심. 짭짤한 감자칩을 바사삭 씹으며 차가운 맥주 한 모금. 아~ 생각만 해도 좋다. 하지만 이런 유혹은 잘 참는다. 11시가 넘는 시간이라 야식은 금물. 아예 생각을 접는다.
그런데 다이어트의 복병은 뜻밖의 곳에서, 너무 쉽게 다가온다. 오후 시간, 아이들이 과자를 꺼내 봉지를 뜯고, 눈앞에 펼쳐놨을 때다. 시각적 유혹으로도 모자라, 아이들의 과자 먹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까지. 늦은 시간이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만든 ‘괜찮아 이쯤’ 논리에 못 이겨 과자에 손이 간다. ‘한 개만, 맛만 볼까’로 시작한 것이 혀가 달고 짠맛을 모조리 흡수한 뒤에야 손을 놓는다.
아, 오늘도 망했다. 달달한 아이스크림 먹지 말걸,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다.
좀 더 생각을 확장해보면, 과자의 유혹보다 좀 더 그럴싸한 자기와의 싸움은 뭐가 있을까? 나에겐 글쓰기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고 오롯이 나 혼자 있는 시간. 그 시간에 나는 글을 쓰는데.. 이건 행복하기도 하지만, 때론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진 좀 시간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즐거우니까 뭔가 쓰는 거지만, 그게 경제력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책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 뭐든 결과물이 뚜렷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공모전이라도 있어서 기한에 맞춰 쓸 때는 열심히 쭉 쓰다가도, 가끔 한 번씩 이 시간에 이걸 하면서 보내는 게 맞을까?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 나가는 선수도 아니고, 그건 정말 뚜렷한 목표가 있어 시간이든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자기와의 싸움을 한다 치지만.. 나는 뭘까?
어찌 보면 이게 더 자기와의 싸움인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보다 더한 고민이 어디 있을까. 뭘 해야겠다고 길이 정해지면 오히려 더 쉽지 않을까?
좀 얘기가 빗나갈 수도 있는데, 대학 다닐 때 친구와 이런 말을 나눴던 적이 있다. 언론정보학과를 다니는 나는 길이 너무 많아 고민이었다. 과에서 너무 많은 분야를 두루 배웠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서.. (지금은 그냥 전업주부 ㅜ 이럴 줄 몰랐다.)
서양화과에 다니는 친구는 그림만 그리면 되니, 길이 정해져 있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그 친구는 다르게 말했다. 오히려 길이 하나면 이거 하나밖에 할 게 없지만, 길이 많으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아 더 좋겠다고.
누군가가 개입하지 않는 자기와의 싸움은 정해진 하나의 답은 없다. 어느 선까지 해야 결승선에 도달한다거나, 몇 점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가 정한(변경 가능한) 어느 지점에 가까이 가면 된다.
그래서 자기와의 싸움에 답은 없지만, 늘 승자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