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 살짝 비켜간 지난 주말, 변산에 다녀왔다.
가는 길, 농가는 녹색의 벼와 하늘색의 하늘이 어우러져 마치 그림 같은 현실을 보여주었다.
같은 듯 다른 그림이 끝없이 이어졌다.
격포 해수욕장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들과 바다를 즐기기에 적당한, 너무 휑하지도 사람에 치이지도 않을 만큼의 인원이었다.
3시쯤 도착했는데, 밀물이 종아리를 툭 치고, 몇 발자국 옮기자 무릎을 쳤다.
핸드폰을 바다에 빠뜨릴 위험을 감수하며 사진을 엄청 찍었다.
다행히 핸드폰은 빠지지 않았지만, 남편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자동차 키가 바닷물을 잔뜩 먹었다. 파도 몇 번에 그만 제 기능을 잃었다.
챙이 큰 모자에 가려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다가, 문득 하늘이 너무 예뻐서 고개를 뒤로 젖힌 순간, 태양 주위에 있는 동그란 무지개를 봤다.
햇무리였다.
햇무리란 햇빛이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에 비치어 해 둘레에 둥글게 나타나는 테두리를 말한다.
처음 보는 햇무리가 신기하여 눈부신 태양을 모자로 가리고, 자외선을 정통으로 받으며 하늘을 쳐다봤다.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알려줬지만, 파도와 노는 것이 더 신나는 듯했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학수가 쓴 시 '폐항' 중에서>
영화 <변산>에서 학수(박정민)와 선미(김고은)가 좋아했던 노을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카메라가 담을 수 없는 색감에 넋을 잃고 바라봤지만, 기억 속에 남은 빛은 매우 흐릿하다. 그저 사진보단 훨씬 아름다웠다 정도.
신기한 건, 사진을 찍을 당시엔 실제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사진이 꽤나 예쁘게 잘 찍혔다고 생각했다.
근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사진이 그때와 달랐다. 분명 더 화려한 색이었던 것 같은데, 좀 밋밋했다. 그때는 눈앞에 노을을 보고 있었기에 감흥이 짙었나 보다.
폭염에 밖으로 나가길 주저하던 올여름,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벌써 가을이 느껴진다. 계절이 변하는 건 순간이다.
또 이러다 갑자기 눈 내리는 겨울이 올 것이다.
덥다고 타박하지 말고, 지나가는 여름을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