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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장>

잘 봐야 보이는 진심, 가족

by 허니모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환경에 따라 남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한다. 영화는 각기 다른 삶을 사는 다섯 남매를 통해서 이 당연한 말을 재밌고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고의적이든 고의적이지 않든 우린 우리가 처한 현실에 맞게 상대에게 답하고 질문한다.

이장 비용으로 생기는 돈 500만원을 똑같이 나눌지, 한 사람에게 줄지,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것인지, 돈으로 하는 것인지. 상황은 온통 질문 투성이고 대답은 제각각이다.



살아생전 아들만 귀하게 여기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모인 네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 어찌 이리 다를까 싶지만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가족으로 묶인 것 빼곤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다섯이다.


홀로 ADHD로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사는 . 돈은 잘 벌지만 바람피우는 남편이 있는 둘째 딸. 돈 없는 남자와 결혼을 앞둔 셋째 딸. 사회의 부조리를 못 참는 넷째 딸. 귀하게 자랐지만 마땅한 직업 하나 없는 막내 아들.


평소에 서로 연락 한 번 없을 것 같은 분위기로 투닥거리지만 둘째의 남편이 딴짓하는 듯한 장면을 목격할 땐 일심동체다.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지만 가족이기에 그 힘은 더 크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다.



진심은 언제 보일까. 가장 많이 하는 말과 행동으로 의식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타인의 마음. 그런데 그게 다일까?


이장하러 가야 하는데 연락 두절된 막내 아들. 너 정말 싫어, 하는 말에도 진심이 가득하다. 그 순간 정말 네가 싫다. 그런데 또 어느 순간엔 가만히 추억을 떠올리니, 막내가 어렸을 때 참 귀여웠다며 웃는다. 그것도 진심이다. 마음은 어리석게도 정반대의 감정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때그때 불쑥 나오는 마음들이 그저 다를 뿐.


꼬장꼬장한 큰아버지는 장남 없인 이장할 수 없다며 누나들을 돌려보내고, 화장하기로 얘기를 끝냈으면서도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흔한 고집불통 캐릭터인가 싶지만, 그간 정성껏 돌 본 동생의 묘를 본 순간엔 그 마음도 고집 아닌 그저 진심으로 느껴진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이 함부로 넘겨짚을 수 없는 진심이 있게 마련이다. 뻔히 보이는 것 같은데도 그렇지 않은, 가진 자만이 아는 마음의 진정성 말이다.


아버지를 싫어해서 눈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넷째는 화장 후, 식당에서 밥을 먹다 울컥 눈물이 터진다. 좋았던 기억 하나쯤은 있었던 것인지, 아버지가 불쌍해서인지, 그저 인생이 허무해서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그 순간 눈물이 나는 것도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이다. 감정을 순간 흐트러지게 하는 것도 다잡게 하는 것도 상황이 아닐까. 그 상황이 가진 분위기를 벗어나면 또다시 감정은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큰 감정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란 말을 남기면서.




막내아들이 임신한 여자 친구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누나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이때야말로 사람은 다들 생각이 다르구나. 타인의 일일지언정 해결은 내 기준으로 하는구나 느끼게 된다. 난 그들 중 누구와 비슷할까. 난 어떤 대답을 하면서 그 안에 있는 나와 마주하게 될까. 순간 그런 생각들이 스쳐갔다.



동생이 어디 사는지도 모를 만큼 관심이 없던 누나들인데, 그런데도 큰 누나가 하는 말은 진심으로 와 닿는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누나들한테 얘기해" 담담히 어쩜 저렇게 진정성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일만으로도 벅차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고민을 나누란다. 네 일만큼은 같이 고민해주겠다, 가족이니까.


가족이 주는 무게감은 행복이든 짐이든 가볍지 않다. 짓눌릴 만큼 무겁고 버겁다. 가족은 내게 무의미해,라고 말한다 해도 그 의미 없음조차 무게가 느껴진다. 가족은 그래서 이상하다. 가족, 수많은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두 글자. 단어가 주는 힘도 큰데 그 존재가 주는 힘은 얼마나 더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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