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낯선 이야기.

by 허니모카

지난 주말, 김장을 했다. 토요일 오전엔 예정된 일을 처리하고, 오후부터는 엄마가 오셔서 같이 김장에 필요한 채소들을 다듬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는 절인 배추에 속을 넣기로 했다. 올해 처음 절인 배추를 사면서 할 일이 많이 줄었다며, 내심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렇게 여유로운 김장 담그기를 계획하던 토요일 아침... 남편이 문자 하나를 받았다. 지인의 아들상. 아들상? 이상한 생각에 남편이 지인에게 전화를 했는데, 상대방은 그저 펑펑 울었다. 잘못 온 문자도 아니고, 누군가의 장난도 아니었다. 난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의 아들은 중학생이었다.

/내일 아침부터 김치 담을 거니까, 술 많이 마시지 마. 늦게 와도 되는데, 술은 조금만 마시라고./ 장례식장에 가는 남편에게 그렇게 말했다. /가서 위로 잘해줘./라는 말 대신에.


12시가 넘지 않은 시간에 들어온 남편은 사람도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남일 같지 않아 같이 갔던 사람들 모두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고 했다. 지인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지인의 아내는 울다 실신하다 울다 실신하다를 반복했다고. 아이는 교통사고라고 했다. 남편과 몇 마디 주고받긴 했지만 가슴이 먹먹했을 뿐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안타깝고 안됐을 뿐.


주말이면 보통 8시가 넘어서 일어나는데, 다음날은 아침잠 없으신 엄마 덕분에 6시에 일어나 김치 속을 준비했다. 채를 썬 무에 고춧가루와 풀을 넣고 버무리는 동안에도 잠깐씩 그 부모들은 어떻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12시쯤 김장이 끝나고, 멀리 사는 동생네 가족이 와서 고기를 삶아 김치와 같이 먹었다. 간만에 만난 가족들과 나눈 대화 사이사이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끼어들었다. 쫄깃한 수육에 방금 버무린 김치를 올려놓고 먹는 맛이란 보쌈집에서 사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그렇게 웃고 즐기는 사이에 누군가의 죽음은 잠시 잊혔다. 그 사람이 나의 지인이었거나 혹은 남편의 지인이었어도 본 적이 있거나 나와 친분이 있었다면 좀 달랐을 것이다. 아마 훨씬 마음이 무거웠을 거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으로 가고, 나는 운동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을 가는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그 사이사이 문득 그 부모들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밥은 먹었을까, 기운은 좀 차렸을까 걱정이 됐다.




죽음이란 무얼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누군가는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런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건 나와 상관없는 그냥 타인의 이야기다. 나와 같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내가 아는 지인들의 이야기는 아닌. 그래서 조금은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다. 그런데 남편의 지인이라니. 그것도 아직 어린아이라니. 가끔씩 무거운 돌이 슬쩍 가슴을 누르다 사라지곤 했다.


요 며칠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길을 다니며 조심하라고 누차 강조했다. 타인의 죽음이 그 당사자보다는 내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으로 바뀐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조금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건 미안함이나 불편함도 아니고..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약간 낯선 감정이다.


죽음과 선이 분명히 그어진 다른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 속엔 슬픔 말고도 다른 감정들이 있는 것이다. 슬픔 속에서도 오늘 당장 내가 할 일이 있고, 기침이라도 나면 감기약을 먹어야 하고, 무심코 테이블에 무릎이라도 찧으며 아악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그런 소소한 일들이 슬픔 속에서도 같이 진행되는 것이다.




하얀색 한지에 검은 먹물을 툭 떨어뜨리면, 가운데에 짙은 색이 남는다. 그 주위로 서서히 퍼지고, 갈수록 농도는 옅어진다.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그런 것 같다.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어떤 색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검정을 띤다면, 나머지는 그 사람과의 친분 관계에 따라 점점 감정이 옅어지는 것이다. 다른 색을 묻히면 검정 색 사이로 다른 색이 보일만큼.


어제 몇몇 지인들을 만났다. 당연한 듯이 최근 있었던 일들을 하나 둘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죽음이 문득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무 안됐다, 어떡해... 하는 그들의 말들이 들리는 것 같았다. 왠지 그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런 대화와 그런 말들을 주고받을 때의 감정들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뉴스에서 본 이야기처럼 잠깐 대화 위에 올랐다 사라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꾹꾹 눌렀다. 나도 내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또다시 그 부모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때, 아니 나뿐만 아니라 그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제각각 전과 다름없는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때 말이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좀 생각을 달리 해보자면, 어쩌면 그런 것이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든 죽음에 다 슬퍼하고 그 생각만을 한다면, 인생에서 우는 날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 편으론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와야, 다른 누군가를 위로할 수도 있고, 누군가 나에게 위로를 건넬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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