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포스터의 느낌이 좋아서, 에단 호크가 보여줄 또 다른 사람이 보고 싶어서 영화를 선택했다.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봤기에, 배우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갈 때마다 뭐지? 어? 어떻게 끝나는 거야? 대체 여주인공은 무슨 생각인 거야? 심지어 이거 막장이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혼인 여주인공 매기(그레타 거윅)는 아이를 원해서 친하지 않은 대학 동기의 정자를 컵에 받는다. 흔히들 겪어가는 사랑, 결혼, 육아의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아이를 낳아 둘이 살기를 바라며.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고, 존(에단 호크)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존은 유부남이다. 똑소리 나는 부인 조젯(줄리안 무어)에게 도망치고픈 아이 같은 어른. 존이 부인과 헤어지고, 매기를 만나 결혼생활을 할 때만 해도, 그래 인생이 뭐.. 뜻대로 되진 않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존의 두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돕지 않고 소설만 쓰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고,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를 봐야 하고, 자신의 일까지 하는 매기가 점점 안쓰러웠다. 결혼 생활의 실체를 겪으며, 매기는 힘들어한다. 어쩌면 그런 결혼생활이 싫어서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려 하지 않았을까? 근데, 현실은 더 고약하게 꼬여버렸으니.
그래서 매기는 계획한다. 이 남자를 전 부인에게 돌려보내자!
아.. 이게 무슨 소리? 여기서부터 고개를 갸웃, 헛웃음이 나왔다.
그 후부턴 매기도, 존도, 조젯도 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헤어지면 되지 뭘 또 돌려보내나. 한 가정의 평화를 깨뜨렸다는 죄책감을 덜고자? 별로 그런 것 같진 않다. 그냥 자기 맘 편하고자 하는 일 같았다.
매기가 조젯에게 계획을 설명하자 처음엔 어이없어하던 조젯도 결국 동의하고, 캐나다에 있는 학회에 존을 부른다. 폭설로 갇힌 곳, 서로가 말하지 않으면 들통날 일 없는 비밀이 가능한 곳과 기분이 말랑해지는 늦은 시간. 자, 넘어오려면 넘어와봐.
존은 보기 좋게 넘어간다. 아, 이 남자도 참.. 대체 누굴 사랑하는 건지.
그리고 존은 매기에게 미안해하다, 매기의 계획을 알고 화내며 집을 나간다. 결국 존은 조젯에게 돌아가고, 매기는 혼자 아이를 키우며 끝난다.
가볍게 본 영화였는데,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세 사람의 심리와 행동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들이 감정에 너무 솔직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는 육아, 결혼.. 그 생활을 끝내고자 매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젯과 존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며 되돌려놨다. 순진한 표정의 그녀가 고단수다, 뻔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진심이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을 뿐이다.
매기와 조젯 사이를 오가는 존 역시 매 순간 진심이다. 바람난 유부남이 부인을 버렸다가, 정말 사랑하는 건 너야.. 라며 돌아가는 건 한심하고 짜증나지만, 존 역시 매 순간 진심이었다. 최선을 다했는가에 대해선 모르겠지만, 감정에는 충실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타입, 자신은 진지하다고 말하지만 정말 가벼워 보이는 남자의 연기를 에단 호크는 완벽히 해냈다.
조젯. 아... 이 여자 왠지 맘에 든다. 표정에서 나오는 당당함 그 자체.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뺏겼음에도 비참해하지 않고, 여전히 남편과는 친구관계로 지낸다. 널 제일 잘 아는 건 나야, 라는 암묵적 동의를 받아낸 듯이.
존이 쓴 소설을 그 앞에서 불로 화르륵 태워 없애버릴 땐, 아 진짜.. 저 거침없는 행동은 뭐야? 무례함? 몰상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존을 잘 알기에 한 행동이었다. 존이 소설보다는 학자로서의 글쓰기에 더 소질이 있음을 정확히 꿰뚫기에. 존이 화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면, 조젯은 무례한 거겠지만 존은 조젯의 의견에 동의하고 그녀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존에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소설은 관둬,라고 알려준 셈이다.
결과적으로 영화에선 셋 다 행복을 찾았다.
현실이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상처받은 기억과 후회가 잊을만하면, 수시로 일상을 침범해 괴롭힐 테지만.
그것조차 가벼운 해프닝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그들이라면.
남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기준이 아닌 저 사람은 진심인 거야, 최선인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이해가 쉬워진다.
영화의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재상영되면서 그들이 이해됐다.
인생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을 때, 우리는 그걸 바꿀 수 있을까?
남이 보기엔 웃기고 어이없는 일이라도 내 행복을 위해서라면?
타인에게 웃음거리지만 나에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남의 이해를 바라지 말고,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타인이 됐을 땐, 한 번쯤 이해라는 걸 해줘야 한다.
그저 하하호호 웃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