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아이이야기

책 속에서 마주한 나 _ 6화

by 뉴우바

페터 한트케는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입니다. 그는 『골키퍼의 불안』, 『관객 모독』 같은 작품을 통해 기존 서사의 관습을 해체하고, 인간 내면의 불안과 언어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탐구해 왔습니다. 한트케의 문학은 화려한 감정보다 차갑도록 절제된 시선, 일상적 행위 속에 숨어 있는 존재의 무게를 포착하는 데 그 강점이 있습니다.


그의 책 『소망 없는 불행』(민음사)에는 두 편의 중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표제작 「소망 없는 불행」과 함께 수록된 「아이 이야기」는, 한트케가 연극배우였던 첫 번째 아내와의 결별 이후 어린 딸을 직접 키우며 겪은 시간을 바탕으로 쓴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서술은 마치 자기 고백처럼 놀라울 만큼 내면에 가깝고, 정제되어 있습니다.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려는 태도이지요.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반복되는 일상을 담담히 묘사하는 사이, 독자는 서서히 스며드는 감정의 파동을 감지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단조로운 관찰의 기록 같지만, 그 속에는 한 아버지의 내면 성장과 성찰이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를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것입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문장 속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발견할 때, 그 부분이 곧 작품의 심장입니다. 단순한 육아 일기나 성장소설을 넘어, 존재와 사랑을 지켜보는 철학적 기록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인공 남자는 평소 ‘항상 현재를 간과한다.’, ‘현실을 잘 보지 못한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삶보다 생각 속에 머물던 그는 아이와의 시간을 통해 처음으로 지금-여기의 무게를 온전히 체감합니다. 대작을 집필하는 일과 아이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그 시간은 “숨겨진 참되고 실존적인 시간”(p.141)으로 변하며 한 인간이 조용히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아이는 보호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작가는 아이가 “보다 큰 모임”을 필요로 하고, 그 속에 자신을 맞출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말합니다(p.155). 부모의 품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아이의 걸음, 눈빛, 울음소리 같은 언어 이전의 언어를 지켜보는 시간이야말로 남자에게는 가장 실존적인 시간이 됩니다.


마지막까지 감정을 절제하던 서사는 단 하나의 축복으로 끝맺습니다.

“칸틸레네 ― 사랑과 모든 열정적인 행복이 충만하길”(p.177)

‘칸틸레네’는 선율처럼 흐르는 부드러운 노래를 뜻합니다. 아이의 삶이 그 노래처럼 사랑으로 충만하길 바라는 마음이자, 나아가 모든 존재에게 보내는 조용한 응원입니다.


『아이 이야기』는 육아의 기록이 아닙니다. 한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그 존재를 통해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칸틸레네. 삶을 노래처럼 흐르게 만드는 감정, 침묵으로 이어지는 사랑, 말없이 전해지는 축복의 힘을 다시금 기억하게 합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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