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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Mar 12. 2022

바람소리

꽃 피던 고향

꽃피던 고향



몸이 아프니 아주 작은 일에도 두려움이 앞선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최악의 경우가 먼저 떠오르곤 한다. 약간의 긴장은 있었지만 큰 걱정 없이 받은 건강검진에서, 몸에 병이 들어 있음을 알았다. 그 후 작은 일이라도 먼저 태산 같은 걱정이 앞선다. 그러니 1년에 두 번씩 받아야 하는 정기검진에 늘 두려움이 앞선다.


만나서 차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도 있지만, 온라인상에서 익숙해진 친구들이 있다. 얼굴도 모르고 사는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글을 통해서 나와 조금은 비슷한 면이 있다 싶으면 서로 소통하게 된다. 그 기간이 짧게 끝나기도 하지만 오래가기도 한다.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나와 같은 걱정거리나 고민이,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친근감을 가지고 소식을 주고받기도 한다. 새롭게 내 방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 유방암 환우가 쓴 책을 읽고 짧은 리뷰를 올렸는데 그 글을 읽었나 보다. 나도 환자인 그녀의 창문을 기웃거렸다.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치료과정에는 검진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참 많다. 검진이 몸에 부담을 주는 검사도 있는데 그 부작용이 지금의 건강상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것은 마음의 부담이다. 혹여 다른 어떤 병이 숨어 있거나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마음의 평화가 병을 이길 수 있다지만 그건 이론상의 이야기고 실제의 환자는 매우 불안하다. 


표준치료 후 일정 시간은 삼 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끝나면 이제부터 삼 개월 재미있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몸은 피곤했다. 피곤함은 검사를 잘못한 건가 하는 불안감이 되어 일상을 흔든다. 그건 검사 중에 받은 약물의 후유증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한동안 그렇게 지나다 보면 기분이나 몸이 나아진다. 그러나 다시 검사 한 달 전이 되면 마음이 불안하고 몸은 피곤에 지쳐 숨 죽은 배추처럼 쭈그러든다. 이건 몸이 두려움에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흐르고 검사실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음에도 체념하면서 병원을 방문한다, 


검사실의 기계 밑에 누우면 긴장한다. 검사기계 앞에서 불안을 호소하던 다른 환우들이 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잘 견디면서 검사를 받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해야 한다. 

어느 날 검사실에 누워서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넓은 운동장과 운동장 옆으로 있던 미루나무와 아카시아 나무, 그 옆의 미끄럼틀과 시소와 그네를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겁도 없이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리던 배짱은 용기였을까, 남들에게 나를 보이려는 객기였을까? 그네에서 떨어진 후로 무서워서 그네를 타지 못했던 건 아쉬운 기억으로 남는다. 친구와 시소를 재미있게 타기 위해 친구와 앉을자리를 조정하던 슬기로움은 어디서 배운 걸까? 


지금과 달리 대중교통이 없었던 시절에 집에 가는 길은 참 오래 걸렸다. 거의 한 시간이나 되는 시골길을 걸으면서 놀면서 가다 보면 해가 저물 무렵에나 집에 도착하기까지 매일 같은 길이지만 수많은 호기심이 있던 길이다. 걸으면서 보리밭 사이에 숨어도 보고, 싹이 올라오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손톱에 문지르면서 잠시 반짝이는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고 까르르 웃으면서 재미있어하던 하굣길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과 고향생각을 하는 사이 시간을 잘 흘러갔고 편안한 마음으로 검사를 마쳤다. 환자복에서 다시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병원을 나서니 화사한 햇살이 반짝이는 오후였다. 고향생각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버스를 타기보다 걸어서 집으로 향하며 내 추억은 계속되었다. 중학교와 여고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할 때까지 계속 걸었던 그 길. 그 길이 끝나가는 동구 밖에 들어서면 마을의 뒤로는 진분홍의 꽃이 활짝 핀 복숭아 과수원이 보였다. 우리 집 담장 옆으로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고, 이어지는 뒷산으로는 진달래가 피던 나의 고향길이 눈에 선하다. 


어린 시절 많이 불렀던 노래 ‘고향의 봄’처럼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어나던 나의 고향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 속에서 어린 마음이 자랐다. 세상의 바람을 막아주던 고향을 떠나 어른이 된 지금도 그 고향마을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소박하지만 자연스러움 그대로를 간직했던 고향마을이 내 가슴에 남아 지금의 나를 포근하게 지켜준다. 


지금까지 정기검진은 계속되고 있다. 그때의 삼 개월 주기가 육 개월로 늘어났을 뿐이다. 지금도 검사실에 들어가면 초등학교의 운동장으로 돌아간다. 아직 남아 있는 그 학교는 이름뿐이고 모습은 완전히 변해 버렸지만 여전히 기억 속의 학교와 고향 마을은 매번 내 마음을 다독여준다. 어린 시절이, 고향이 주는 그리움과 추억이 지금까지 내 건강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는 것 같다. 고향생각 덕분에 검사실에서의 시간이 긴장 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온라인 속의 환우에게 댓글을 달았다. 검진 시간을 기다리면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고 싶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지요. 제 경우는, 검사실에서 고향마을과 어린 시절을 생각한답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던 시골마을이지요. 꽃피는 마을동산에서, 모래바람 불어오던 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검사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더군요. 철없던 그 아이들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보고 싶네요. 내 삶이 꽃으로  피기 시작하던 그  시절 속의 친구들이."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고향의 추억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여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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