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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Mar 24. 2022

바람소리

내 마음이 그래

며칠 전, 일요일이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다.

몸 어딘가에서 형체도 없는 아픔과 두려움이 나를 억압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달랠 수 없는 덩어리 하나가 가슴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것 같은데, 그걸 꺼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이 더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주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벌컥거리며 물을 한잔 마셔보다가 창문을 할짝 열어보기도 했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며칠 전, 동네 의원에서 마음이 우울하고 자꾸만 걱정이 생기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라던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 나, 아파. 뭐가 어때서 그러냐고 하지 말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인정해 줘.

느닷없이 남편을 향해 말했다. 

내 말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는 남편인지라 그렇게 쐐기를 박았다. 

- 그래,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그의 대화 방법이 예전과는 다르다.

나를 먼저 인정한다.

그가 무슨 죄가 있나. 

환자를 아내로 둔 재수 없는 남자일 뿐이지. 

다른 때와는 다르게 나를 바라보면서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지극히 긍정적인 그가 어떨 때는 위기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에 던진 말이지만 그저 내 화풀이일 뿐이었다. 

그날, 종합병원의 응급실에 가서 혈액검사와 소변검사와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이비인후과에서 코와 목을 검사받았다. 

그 사이 그간의 평범하지 않은 병력이 적힌 내 차트가 몇 사람의 의료진에게 건네 졌다. 

수액을 맞추기 위해 보이지 않는 혈관을 찾는 간호사가 진땀을 흘렸다. 

몇 사람의 의료진이 다녀가는 동안, 코가 막히고 목이 아프고 온 몸에 기운이 없고 머리가 멍해서 쓰러질 것 같다고 했다.

삶의 순간을 가르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종합병원의 응급실에 네 시간 동안 누워 있는 동안, 참으로 어이없게도 나는 마음이 평안해져 갔다. 

그리고 받아 온 건 작은 가글 한 병이었다. 

이미 예약되어 있던 두 달 후의 방문일에 외래를 들어오라는 전혀 새롭지 않은 지시를 받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회원이 모임에 나타났다. 

그녀는 내게 체육센터에서 하는 환자를 위한 운동 프로그램에 대해 물었다. 

- 환자건 환자가 아니건 꾸준히 운동하는 건 좋으니까 주변에 환자가 있으면 프로그램에 참석하라고 해. 왜 갑자기 관심을 가져? 주변에 환자 있어?

- 네, 내가 하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아요.

-?.  내가라고?

- 몰랐어요? 저에 대해서? 

- 언제? 아, 그래서 한동안 모임에 안 나온 거였어?

그 순간부터 당연이듯이 같은 질병을 가진 그녀와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 자기야, 오늘 우리 회원이 환자라는 걸 알았어. 아주 초기여서 항암치료는 받지 않았데. 그래도 입원해서 수술하고  회복하는 동안 병원에서 비상이 걸렸었대.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대잖아. 인턴 레지던지 간호사들이 몰려와서 한동안 야단 법석이었데. 검사상 이상은 없는데 숨을 못 쉬겠더라는 거야. 걔네 남편이 와서 막 화내고 그랬대.

 - ...?

- 그치이. 검사상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환자에게 순간적으로 어떤 증상이 왔다 갈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쇼크라는 것도 있잖아.

- 그래 그럴 수 있겠지.

며칠 전, 응급실 사건을 일으키면서 남편에게 미안했던 변명을 이렇게 둘러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요, 하는 속마음을 숨기고.




아이들이 자라 이제 제 길을 찾아 나갔다.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면서 부부의 시간을 가질 무렵, 느닷없이 환자가 돤 아내를 가진 남자.

그는 출근을 하면서 오늘은 무얼 할 건지 묻는다. 

- 뭐. 꽃이 예쁘니까 사진 좀 찍어보고 오후엔 모임에 나갈게.

용기와 자신감이 나이가 아닌 다른 것 때문에 쭈뼛거리게 된다는 것이 못내 속상하다. 

건강한 아내를 가진 남자는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나를 대하는 대화법이 변했고, 세밀하게 나를 대하는 남편.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이 자꾸만 미안해진다. (2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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