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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Dec 30. 2023

노화의 종말

일주일이라도 젊게 살자

손녀를 돌보며 서울에서 지내던 시간이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이제 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딸의 사회생활을 지원하고 싶지만 나이 든 나도 이제는 지쳐가고 있는 듯하다. 나이 들어가는데 더 나이 들기 전에 자유의 시간을 갖고 싶은 욕심도 여전히 마음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 아니면 엄마의 시간을 가지려 하는 것인지 딸이 사회생활을 접었다. 이제부터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만의 사회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년만에 독서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이지만 그동안 내 시간에 쫓기어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하고 책도 읽지 못했다. 독서를 시작할 때는 재미있고 쉬운 이야기의 책으로 시작  해야 하는데 선택권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진행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번에 회원들이 읽는 책은,  노화와 유전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가 쓴  <<노화의 종말>>이었다. 독서모임에 가려 책을 들었다.  책은 무겁고 내용도 무겁다. 과학이나 의학에 전문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읽기 힘든 책이었다.  


사람의 수명은 과거보다 늘어났지만 그건, 질병이 세분화되면서 그 질병에 대한 치료에 의해 수명이 늘어난 거지 노화 자체를 치료해서 수명이 늘어난  건 아니란다. 노화는 사람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고 인정하는데, 그런 이유로 노화를 하나의 질병으로 생각하며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화를 하나의 질병으로 생각하고 연구하며 치료하고 관리하면 인간의 수명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그러기 위한 노력도 물론 필요하다. 소식하며 지방을 줄이는 식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책은 전개된다.  


책을 읽다가 덮었다. 이미 노화가 와버린 나는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고 있자니 피곤하다. 평소에 아픈 허리가 더 아프다. 노곤하고 잠이 쏟아진다. 벌써 노화가 내 옆에 와 손을 잡고 앉아있다. 과학과 의학이 발전해서 노화를 치료한다 한들 이미 노화가 시작된 내게 어떤 도움을 주려나?  수명이 길어진다 한들 질 좋은 내 삶의 시간은 얼마나 되려나? 수명 연장만 되는 것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즐거운 삶을 살아내는 게 더 필요한 일인 것 같다.  


12월, 가족모임이 있었다. 언니와 동생들,  올케와 함께 조카를 따라 도시의 밤길로 나섰다. 아파트 단지 앞의 상가지역은 불빛이 밝았고 오가는 오가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번화가의 식당마다 손님이 가득하고 오가는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길을 우리도 걸었다. 이것도 오랜만이다. 그동안은 해가 지면 집에 들어앉아 쉴 생각만 하고 살았다.  


조카가 4컷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나이 든 우리들은 "그게 뭔데? "하면서 조카를 따라 작은 상가에 들어갔다. 무지개 색으로 뽀글뽀글한 머리를 만든 가발을 쓰고 색이 짙은 장난감 같은 선글라스를 썼다. 우리 모두 모양이 다른 차림으로 서고 보니 유치하지만 상대를 보며 웃음이 절로 나오는 재미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린 조카의 설명에 따라 포즈를 잡고 카메라 앞에 섰다. 작은 화면 속에 일곱 명이 얼굴을 들이대고 10초가 가면 다른 포즈를 취하기를 반복했다. 질서 없이 그저 웃으며 움직이다 보면 어느 사이 사진이 찍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짧은 순간에 만들어진  사진 4장을 골랐더니 인화된 사진이 나온다. 재미있었다. 평소에는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쳐다도 안 보던 일을 저지르고 그 결과물을 보는데 너무나 재미있고 속이 확 뚫리는 것 같다. 조카가 보내준 카톡 속의 4컷 사진은 내가 아니 듯한 나였는데,  사진을 찍을 때 우리의 행동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웃고 또 웃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자매 모두가 하하 거리며 웃었다. 애들처럼 노니까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전화하며 그 이야기를 하고 웃는다. 철없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문화도 접하며 지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하면서.


이미 노화가 와버린 몸이라 책을 읽는 일은 눈이 피로하고 머리가 무겁고 몸도 피곤하다. 읽던 책을 덮고 생각하니 노화의 종말은 과학이나 의학의 발달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마음에서도 찾아야 하는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서 젊음의 시간이 지나고 나이 들어 노인이  되어 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은퇴를 하더라도 변화하는 문화에 어느 정도는 따라가면서 살아가는 게 노화의 속도를 줄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갑자기 과학과 의학의 변화가 생겨 우리 세대의 건강을 확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다. 마음이 조금 젊게 살 때, 건강을 위해 나름대로 정보를 공유하고  이용하면서 즐겁게 사는 게 노화의 종말이 아닐까, 싶다 내게는.  


며칠 전 가족모임에서의 에피소드로 마음이 젊어진 것 같았다. 어른이니까 조카들의 놀이를 바라보며 나 때는, 이라는 말로 젊은 세대의 생각과 부딪치기보다는 조금은 따라가면서 변하는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야겠다.  한편으로는 과학과 의학의 발달과 연구로 건강하게 수명을 연장하는 정보를 내 것으로 이용해보기도 하면서, 현대사회 속에서 하고 싶은 것도 조금씩 시도해 보며 즐겁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젊게 만드는 것, 그게 현실적인 노화의 종말이 아닐까 싶다.


조카가 만들이준 4컷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젊어졌다. 아마도 일주일쯤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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