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이는 치악산이 하얀 모자를 썼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로 차가운 날들이 계속되며 치악산 정상부근이 하얀 모습이 집에서도 보인다. 저 산에 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새벽 등산을 오른 적이 있다. 그건 젊은 나이가 주는 용기였으리라.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해드랜턴을 쓰고 1월의 찬 바람을 맞으며 정상을 오르던 날, 아마도 내 기억에서 겨울 상고대를 처음 보았던 날인 것 같다. 어둠 속을 오를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새벽 햇살이 떠오르고 나니 하얗게 상고대로 덮인 산이 너무 아름다웠다. 어떻게 나무가 저렇게 하얗게 변하지? 마치 짐승의 뿔처럼 하얀 나뭇가지를 가진 숲이 만든 설산이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때의 아름다웠던 풍경들이 기억속에 오래 남아있다.
스키장에 갔다. 스키를 타러 간 것이 아니라 정상에 오르는 등산이 어려워지고 나서 스키장의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올라갔다. 한 때는 걸어서 오르던 정상이었지만 편하게 곤돌라에 앉아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 정상에 오르니 산 위의 모습이 하얗게 변했다. 멀리 보이는 굽이굽이 능성도, 바로 앞의 나무 숲도 줄기를 하얗게 늘어뜨린 모습 속에서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겨울나무의 아름다움 속에서 그 모습을 다시 보기 위해 건강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짐하던 날들도 있다.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고 며칠 동안 매일 창문으로 보이는 설산이 아름다워 그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그러나 접을 건 접어야 한다. 오라는데 없는 것 같아도 갈 곳이 많아 여전히 바쁜 나날이다. 그러니 먼 곳으로의 나들이가 쉽지 않다. 그리고 함께 떠나자는 말도, 혼자 떠날 수 있는 건강이나 용기도 이제는 사라졌다. 다만, 지나간 날들이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