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에 갔다.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남편과 토요일 미술관 관람을 가기 위해서였다.
미술관에 함께 들렸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손녀와 놀아주고 집으로 내려올 예정이었다.
금요일 가족 외식을 하고 들어 와 다섯 살 아이와 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번 일요일에 모두 모여서 둘레길 걷습니다."
오래된 지인들 모임의 회원 000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래? 알았어요. 서울에 와 있는데 토요일 밤에 내려갈게요."
색종이 접기에 빠져 있던 아이가 휙 돌아 앉는다.
"할머니, 일요일에 가기고 했잖아. 토요일에 가면 나는 000 싫어할 거야."
"?"
000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전화를 끊고 아이를 설득했다.
"토요일에 너랑 놀고 밤에 갈 거야. 일요일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약속이 있어."
"그렇지만 나랑 놀다가 일요일에 간다고 한 약속이 먼저니까 그 약속을 지켜야지."
다섯살 손녀가 야무지게 또랑또랑 한 목소리로 자기가 먼저 한 약속이란다.
내가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이니까.
난감하네.
집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동생이 게를 한 상자 보냈단다.
금요일에 도착한 게를 어떡해? 생물이라 바로 처리해야 하는데.
아들에게 연락해서 우리 집에 가서 게를 빈김칫통으로 담아 김치 냉장고에 옮기라고 했다.
어설픈 남자의 손으로 일을 잘 처리했는지 걱정이 된다.
토요일.
미술관을 다녀와 오후 시간을 아이와 함께 놀았다.
잘 놀았으니 집으로 가도 될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 약속은 지키라고 했지? 나는 일요일까지 할머니랑 놀 거야."
"그렇지만 택배가 왔는데 그걸 얼른 냉장고에 넣어야 되는데 어떡하지? 집에 아무도 없어서 다 상하겠네?."
다섯 살 아이는 알건 다 안다.
택배 아저씨가 가져온 걸 냉장고에 못 넣으면 어쩌냐는 말에 한동안 침묵한다.
"그럼 금방 또 올 거지?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아."
타협에 성공했다.
집으로 돌아와 김치 냉장고에 잘 보관된 게를 쪄서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게를 먹으며, 동강할미꽃 필 때 함께 갈 수 있냐고 물었던 말이 떠울라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보내준 게, 잘 먹었어. 고마워. 동강 할미꽃 필 때 나 좀 데려가 줘."
조만간에 동생 만나 영월 나들이 가고 맛있는 거 사 줘야겠다.
일요일.
오래된 부부 모임 회원들과 둘레길을 걸었다.
추위가 가신 날씨 속에서 숲길을 걸으니 웅크렸던 마음이 풀린다.
겨우내 달고 살았던 감기도 나을 것 같이 상쾌한 기분이다.
숲에서 돌아와 이웃에 새로 개업한 식당에 들러서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먹었다.
"와, 음식 맛있다. 그치?"
음식만 맛있나? 마음도 맛있다.
"이제 날씨도 풀렸으니 자주 만납시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 사이로 더 나이 들기 전에 자주 만나자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바빠지게 생겼다.
손녀 만나러 서울도 가야 하고, 동생이랑 나들이도 가야 하고, 오래된 지인들과 여행도 가야 하고.....
이 모든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도록 건강에도 신경 써야 한다.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한 힘은 건강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나와의 약속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