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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Mar 15. 2024

약속

소소한 일상

지난주 서울에 갔다.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남편과 토요일 미술관 관람을 가기 위해서였다.

미술관에 함께 들렸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손녀와 놀아주고 집으로 내려올 예정이었다.

 

금요일 가족 외식을 하고 들어 와  다섯 살  아이와 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번 일요일에 모두 모여서 둘레길 걷습니다."

오래된 지인들 모임의 회원 000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래? 알았어요. 서울에 와 있는데 토요일 밤에 내려갈게요."

색종이 접기에 빠져 있던 아이가 휙 돌아 앉는다.

"할머니, 일요일에 가기고 했잖아. 토요일에 가면 나는 000 싫어할 거야."

"?"

000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전화를 끊고 아이를 설득했다.

"토요일에 너랑 놀고 밤에 갈 거야. 일요일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약속이 있어."

"그렇지만 나랑 놀다가 일요일에 간다고 한 약속이 먼저니까 그 약속을 지켜야지."

다섯살 손녀가 야무지게 또랑또랑 한 목소리로 자기가 먼저 한 약속이란다.  

내가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이니까.

난감하네.


집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동생이 게를 한 상자 보냈단다.

금요일에 도착한 게를 어떡해? 생물이라 바로 처리해야 하는데.

아들에게 연락해서 우리 집에 가서 게를 빈김칫통으로 담아 김치 냉장고에 옮기라고 했다.

어설픈 남자의 손으로  일을 잘 처리했는지 걱정이 된다.  


토요일.

미술관을 다녀와 오후 시간을 아이와 함께 놀았다.

잘 놀았으니 집으로 가도 될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 약속은 지키라고 했지?  나는 일요일까지 할머니랑 놀 거야."

"그렇지만 택배가 왔는데 그걸 얼른 냉장고에 넣어야 되는데 어떡하지? 집에 아무도 없어서 다 상하겠네?."

다섯 살 아이는 알건 다 안다.

택배 아저씨가 가져온 걸 냉장고에 못 넣으면 어쩌냐는 말에 한동안 침묵한다.

"그럼 금방 또 올 거지?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아."

타협에 성공했다.


집으로 돌아와 김치 냉장고에 잘 보관된 게를 쪄서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게를 먹으며, 동강할미꽃 필 때 함께 갈 수 있냐고  물었던 말이 떠울라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보내준 게, 잘 먹었어. 고마워. 동강 할미꽃 필 때 나 좀 데려가 줘."

조만간에 동생 만나 영월 나들이 가고  맛있는 거 사 줘야겠다.  


일요일.

오래된 부부 모임 회원들과 둘레길을 걸었다.

추위가 가신 날씨 속에서 숲길을 걸으니 웅크렸던 마음이 풀린다.

겨우내 달고 살았던 감기도 나을 것 같이 상쾌한 기분이다.

숲에서 돌아와 이웃에 새로 개업한 식당에 들러서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먹었다.  

"와, 음식 맛있다. 그치?"

음식만 맛있나? 마음도 맛있다.

"이제 날씨도 풀렸으니 자주 만납시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 사이로 더 나이 들기 전에 자주 만나자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바빠지게 생겼다.

손녀 만나러 서울도 가야 하고, 동생이랑 나들이도 가야 하고, 오래된 지인들과 여행도 가야 하고.....

이 모든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도록 건강에도 신경 써야 한다.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한 힘은 건강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나와의 약속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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