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투표일이었다. 투표는 내게 주어진 한 표를 행사하는 중요한 날이다. 한 표지만, 소중하다. 주민등록증을 들고 투표장에 갔다. 투표장을 나오며 평소처럼, 지갑에 주민등록증을 넣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휴일이니 바람이나 쐬자며 드라이브에 나섰다.
짧은 기간 피었다 지는 벚꽃 구경을 하러 강릉으로 갈까? 청풍으로 갈까? 를 정하지 못하고 톨게이트 부근까지 오며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다가 충북 단양을 가기로 결정했다. 휴일이라 강릉방향은 많은 사람들이 벚꽃구경 나섰을 것 같다. 그렇다면 길이 복잡할 것이라 예상을 하며 높은 산에 올라 봄이 오는 경치 감상을 하자는 생각으로 결정한 장소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 두산마을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회사들이 많이 모여있고 활공장이 있다. 호기롭게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하늘을 날아갈 자신은 없지만 활공장 옆에 있는 카페를 가기로 했다. 일방통행으로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가면 해발 600에 위치한 활공장 바로 옆에 카페가 있다. 방송 <전지적 참견시점>의 이영자가 다녀간 곳이고,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가수 장민호가 방송을 위해 다녀간 곳이라고 한다. 높은 산 위에 위치한 카페라 전망이 아주 좋다. 투표일인 휴일이기 때문이지 관광객들이 많다. 카페 2층의 실외공간으로 나가면 바로 옆이 패러글라이딩 출발장소다. 콩당콩당 새가슴인 나는 하늘을 날지는 못하고 구경만 한다. 그러나 마음은 새가 되어 하늘을 나르는 기분이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카페의 실외구간에서 패러글라이딩 구경하고, 빵 코너 둘러보느라 아직 커피주문도 하지 않아 카운터 근처도 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천하에 실명이 그대로 공개되다니. 당황스럽고 어이없다. 신분을 탈탈 떨리고 다니눈구나.
투표장에서 주민등록증을 사용하고 주머니에 넣었고, 카페 주차장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주민등록증이 있다는 걸 확인했는데, 어디서 빠진 거지? 사람 많은 카페에서 공개방송으로 내 이름이 불린 것보다 신경 쓰이는 건 건망증 심하다고 물건 잘 챙기라고 잔소리하는 남편이 더 신경 쓰인다. 남편의 놀란 눈이 내게 박힌다. 슬그머니 남편의 눈치를 보며 카운터로 갔다. 주민등록증 주워 얌전히 카운터에 맡긴 누군지 모르는 손님에게 감사드린다.
"감사합니다. "
어디서 잊은 지도 모르고 온 집안 다 뒤질 뻔했다.
"어디서 잊어버린 거야?"
소소한 잘못은 덮어 줄 수도 있건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남의 편처럼.
그때, 나의 시선이 남편의 휴대폰에 가서 머무른다.
"전화기에서 빠졌지. 케이스가 헐거워서 바꿔야겠어."
무심하게 말하는 나를 보는 대신 남편은 낡은 자신의 휴대폰 케이스를 바라본다. 다행이나. 그의 케이스가 낡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의 실수로 주머니에서 빠졌지만 슬그머니 휴대폰케이스에게 죄를 넘겼다.
"그래, 이게 낡아서 잘 빠지긴 해."
낡아서 헐거워진 휴대폰케이스를 만지작 거리는 남편이다.ㅋㅋㅋㅋ~
"안내말씀 드립니다. 0000호 자동차 열쇠를 보관 중이니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웃음이 터진다.
"어머나, 뭘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은가 보네."
소중한 무언가를 나만 흘리고 다니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실수가 내 실수를 덮어주는 것 같다.
실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며 산다. 하고싶어서 한 것도 아니지만 잘못한 건 맞다. 사소한 실수도 하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 하지만, 나의 잘못을 누군가의 실수와 함께 웃음에 실어서 날려 보내는 시간이다. 덕분에 잔소리에서 벗어난다.
커피를 마시며 내려다보니 산아래 흐르는 남한강과 마을 풍경이 좋다. 그러나 맑지 않은 날씨가 아쉽긴하다. 파란 하늘과 공기가 맑은 날이었으면 더 좋았을 풍경이다. 훨훨 하늘을 나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산 위에 앉아 봄날의 망중한을 즐기는 하루였다. 사람 많은 카페에서 공개된 안내방송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름이 팔려 잠시 창피하긴 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다. 실수한 그녀의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