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로 여행을 다녀왔다.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를 보겠다는 야무진 낭만의 꿈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이란 것이 내 꿈에 맞추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여행이란 자체가 내게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간을 가지는 일이다. 세상의 일 또한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게 정상이다. 야무졌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 쏟아지는 별은 보지 못했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북두칠성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왔다. 몇 명의 지인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는데, 다녀온 후의 감상은 저마다 다르다. 그 다름이 각자의 세계를 인정하는 일이니 그들의 말에 그저 웃음으로 마무리 짓는다.
"나는, 다음에 또 다른 몽골을 가고 싶어."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밥상에서, 잘 익은 빨간 배추감치를 한 젓가락 집어먹으며 내가 한 말이다.
"?"
말없이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에서 가고 싶지 않다는 뜻을 읽었지만, 그건 그의 생각이고 내 생각은 또 가고 싶다는 거다. 몽골을 며칠 다녀왔다고 해서 그 나라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경험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다른 지역을 또 보고 싶다는 꿈이 어젠가는 이루어질 수도 있는데, 꿈도 못 꿉니까?라는 마음으로 아침을 먹었다.
몽골은 사람보다 키우는 동물이 더 많은 나라다. 소와 말과 낙타, 양과 염소가 많은 나라다. 넓고 넓은 초원은 그들의 것이다. 그러니 먹는 음식도 고기를 많이 먹는 것 같다. 기르는 동물들이 주는 젖과 고기가 그들의 양식이다. 초원은 넓어도 자연조건이 좋지 않아, 겨울은 길고 하루의 일교차도 심하다. 토양도 식물들이 자라기 좋지 않은 환경이라 채소도 흔하지 않고 초원의 풀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축을 위한 풀밭이다. 말이 풀을 뜯고 지나가면 소가 와서 풀을 먹고, 다시 양과 염소가 그 자리에서 풀을 먹는다. 내륙지방이라 바다가 없으니 생선도 먹기 힘들고, 귀한 초원의 풀은 가축을 위한 먹이이니 주민들은 나물 종류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행객에게 주는 음식에는 채소도 함께 주어졌다.
이제는 원주민의 생활도 현대화되었고, 여행객들이 머무는 게르 숙소나 그곳에서 제공되는 음식은 과거의 유목민 생활과는 많이 다르게 현대화되었을 것이다. 여행 중 식사 시간마다 고기가 등장했다. 양고기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였다. 소고기와 양고기를 채소와 함께 샤부샤부로 먹었고, 소시지를 곁들인 간단한 호텔 조식도 괜찮았다. 삼겹살도 구워 먹었고 이름은 모르지만 양고기 수프나 닭볶음탕처럼 생긴 음식도 나오고 허르헉이라고 하는 몽골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먹는 양고기음식도 맛보았다. 맛있게 먹었다고 자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부감 없이 끼니때마다 잘 먹었다.
대체로 음식을 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안내 받은 식당에서 먹은 김치찌개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김치와 재료를 이용해서 한국인 주방장이 끓인 것인가? 할 만큼 맛있게 먹었다. 차려진 다른 반찬은 먹지 않았고 김치찌개로 깨끗하게 밥 한 고기를 비웠다. 시원한 얼큰함이 좋은 만족한 식사였다.
“맛있는 김치찌개 먹게 해 줘서 고마워요.”
가이드에게 이런 인사까지 했다. 단 며칠간의 식사지만 내 입은 우리의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늘 밥상에 오르는 김치. 집집마다 맛이 다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김치인데, 그렇다고 내가 김치를 맛있게 담그거나 즐겨 먹었던가? 있으면 먹고 없으면 다른 반찬으로 식사를 했다. 늘 김치가 떨어지지않게 담그지만 김치 없는 밥상도 자주 있었던 거 같은데, 며칠 사이애 내 입은 김치가 그리웠던 것 같다.
오래전, 우리 가족 첫 여행지는 미국 서부지역이었다. 그때, 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먹성이 좋아 늘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였는데 김치를 먹지 않았다. 매워서 그런가 싶어서 백김치도 하고, 때로는 빨간 고춧가루를 물에 씻어서 주기도 했지만 도대체 김치는 먹지 않는 아이였다.
“식사는 잘하셨나요?”
투어 중에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물었고 여행객들은 마지못해 “잘 먹었다”라고 대답했다.
“아니요? 맛이 없어요. 김치 주세요.”
느닷없이 딸이 소리쳤다. 깜짝 놀랐다. 김치 싫어하는 아이고, 여행 중에도 제공되는 음식을 그럭저럭 잘 먹는 줄 알았는데 김치가 먹고 싶다니. 평소에 김치를 먹지 않는 아이지만 한국인의 대표 음식인 김치에 길들여져 있었던 모양이다.
짧은 몽골 여행 중에 제공되는 음식을 잘 먹었음에도 김치찌개를 정신없이 먹은 건, 가이드에게 김치찌개를 먹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한 건, 은연중에 내 몸이 김치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신토불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래전 어렸던 딸은 엄마말에 고개를 저으며 절대로 먹지 않던 김치를 여행지에 거 달라고 하소연했던 걸 기억하면서, 몽골에서 먹은 김치찌개를 생각하면서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아침 밥상에서 김치를 먹었다. 며칠간 비어있던 집의 냉장고에서 꺼낸 건 김치와 장아찌 밖에 없어도 아침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김치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