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리나를 그만두다

by 순미

나이 들어가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진다. 마음이야 이팔청춘 같아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고 싶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무언가를 해보고 싶지만 현실을 만만치 않다.


오래전 젊었던 날 여자는 자신을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했다. 가족을 위해 나를 버리고 살아야 했다 그걸 의식하지도 못하면서 당연히 그래야 했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길 해봐야 왜 그렇게 살았냐고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게 살았다. 시골에 살면서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어르신 많던 봉건적인 마을에서 여자는 결혼하면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소경 삼 년을 살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고 시집을 갔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의 결실로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의미보다는 나이가 들면 시집을 가야 하는 줄 알았다.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야 하는 역할에 충실하게 사는 게 열심히 사는 일인 듯이 살았다. 내 이름 석자 내놓지 못했다. 물론, 오래전 그 시대에도 사회로 나가는 친구들도 있었고, 불과 몇 년에 차이도 나지 않지만 동생들은 나와는 다름 삶을 이끌러 갔다. 여자지만 대학도 다니고 졸업 후에 남녀 차이가 심한 사회 속에 자기 명함을 내놓고 사회생활을 했고, 시간이 흐르며 여성의 사회 참여비율은 더 높아졌다.


세월이 흘러 중년의 어느 날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젊어서 하지 못한 공부를 하기 위해 방송 통신대에 입학을 하고 졸업을 했다. 그걸 직업생활로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지역의 인문학 강의실을 기웃거리며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사회단체에 나가 내 이름을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 앞에서 쪼그라들던 마음도 사라지고 비로소 사회 속의 그들과 나는 평등하다는 인식을 갖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내게 사회생활을 확장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건강이 발목을 잡았다. 거울 속에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 핼쑥한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 내 삶의 끝이 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절망도 시간이 흐르며 회복되어 갔다.


딸이 결혼을 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많은 시대라고는 하지만 육아문제를 안고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딸의 집으로 들어가 딸의 사회생활을 돕기로 했다. 세상은 코로나 19라는 역병으로 시끄러운 시기라 나는 더욱더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건강은 나날이 힘이 없어지고 사회 속에서 소외된다는 소외감이 깊어갔다. 마음이 우울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딸은 중대한 결심을 한다면서 사표를 던졌다. 그게 1년 전이다.


5년 동안의 생활을 접고 1년 전,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젊어서 5년과 지금의 5년은 천지차이다.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5년은 가족의 행복을 생각하기에는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이제 내 시간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나로 살아가는 집을 짓기에는 나이에게 용기를 빼앗기는 기분이다. 내게 남아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생각하니 그렇다. 그러나 나이는 들었어도 나를 위한 삶이 중요하고 무언가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음악을 하는 친구가 있다.

“나, 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을까?”

친구는 새로 시작하는 오카리나 반을 추천했다. 퇴직한 60대들이 모여서 시작하는 모임이라고 했다. 평소에 악기하나 하고 싶다던 막연한 희망이 이루어지는 시간인 것 같았다. 자라면서 무언가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더 잘하기 위해 그 분야를 노력하는 게 사람인데, 타고난 음치이니 음악 관련 방송도 보지 않았고, 흔한 노래방도 가지 않아 음악은 무지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기 하나 다루는 게 로망이었던 나다. 나이 들어 가면서 팔다리 허리는 점점 아파갈 테고, 무거운 걸 들고다니기도 힘들어 질 테다. 가방 속에 들어가는 작은 악기 오카리나. 이게 딱, 내게 맞은 악기다. 오케이. 오카리나 반으로 입장했다.


어느 악기건, 악기는 쉽지 않다. 솔, 음 하나도 바람 새는 소리가 나서 음정을 잡기 힘들다. 솔을 시작으로 파미레도를 배우고 다시 시와 높은 도를 배우면서 간단한 노래 하나 수강생들과 합주할 수 있는 시간이 오니 성취감에 기쁘기 한이 없었다. 내가, 제대로 음을 내고 노래 하나 연주할 수 있다니. 나이 들었다고 주저앉아 있지 않기를 잘했어. 정말 잘했어. 흐뭇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강의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걸으며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 마음의 여유가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찾아온 울렁거림과 어지럼증 때문에 병원에 들렀더니, 이유는 이석증이라고 이비인후과에서 진단을 내렸다.

"선생님, 제가 이석증이 와서 힘드네요."

오카리나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한 마디였다.

"어머, 이석증은 오카리나 쉬어야 되는데요?"

"아니 이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내가 얼마나 즐겁게 오카리나를 배우고 있는데요?"

그랬다. 나는 몰랐는데 이석증이 있으면 한동안 오카리나 연습을 쉬어야 한다고 한다. 생각과 다른 내 형편에 우울이 찾아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관리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을 접는다. 상황이 가져온 결과다. 나이 들으니 생각하지 못한 걸림돌이 많다.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여유시간이 주어진 것 같지만 나이 들으니 만만한 게 없다는 생각 속에서 조용히 욕망을 하나하나 접는다. 큰 욕심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태어나길 음치로 태어나고 젊은 날 음치탈출을 시도해보지 않았으니, 나이 들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하나 가지고 싶다는 건 지나친 욕망이었던가보다. 포기할 건 포기하자고 마음을 달래지만 아쉬움으로 쓸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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