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보따리

- 먹는 입이 예뻐서

by 이순미

동생의 집에 다녀왔다. 예전에 어머니가 농사짓던 밭에서 농사를 짓는 동생이다. 온갖 채소와 곡식들을 농사지어서 친정 식구들에게 나누어준다. 벌써 가을 걷이를 해야하는 시간인지 오늘은 풋고추를 따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은 가을 볕에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벌써 가을걷이를 시작으로 바븐 동생의 집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나이들어 가면서 문득 문득 보여지는 어머니의 모습. 그 모습으로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 이것저것 보따리를 싸는 걸 보면 동생이 마치 나의 친정엄마인가 싶기도해서 웃는다. 동생을 보며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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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보따리>


친정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를 나눌 사이도 없이 어서 집으로 와서 마당가에서 잘 익어가고 있는 과일을 따 가지고 가라고 말한다. 바쁜 하루의 시간표를 머리로 떠올리면서 거절도, 가겠다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알았다는 말로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그 속에는 '없는 시간을 어쩌란 말이야 나도 바쁜데' 하는 약간의 짜증이 숨어 있었다.


전화를 끓고 다시 집안일을 하며 텔레비젼에서 방송되는 퀴즈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 최종결승에 오른 아들이 기족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간이었다. 결승전에 나가있는 젊은 남자는, 자신이 군대에 가서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 자신의 아버지는 하루도 빼 놓지 않고 800통이 넘는 편지를 써 주셨는데, 훈련받는 다는 이유로 제대로 답장도 해 주지 못했다면서 울먹이고 있었다. 그에 대한 대답과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한 말씀 해 달라는 사회자의 부탁으로 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버지 자신의 군대 시절에는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편지를 받지 못했던 그 아쉬움 때문에 자신은 두 아들이 군대 생활을 할 때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썼고 그것이 자식들이 바르게 클 수 있었던 밑 바침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잘 자란 아들들을 바라보며,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으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느낀다면서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텔레비전 속의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친정어머니의 전화를 다시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친엄마 없이 컸던 어머니는, 오래전 가난했던 나라에서 자란 어머니는, 엄마에 대한 사랑이 그리워서 엄마가 된 다 큰 딸들을 아직도 품에서 내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엄마 없이 자랐던 어린 날의 한이 친정어머니의 무의식속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끼니때 마다 쌀 걱정 반찬 걱정으로 한숨을 쉬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서 먹는 것이 한이 맺혀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엄마가 된 딸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가난해서 마음 아프게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을 떠 올리며 달들에게 풍요를 나누어주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생활이 많이 바뀌어서 마당 한 옆에 줄줄이 서 있는 과일 나무들과 텃밭의 채소를 바라보면서, 먹을거리가 풍성한 시골 들판에 서서 친정어머니는 딸의 입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젊었던 시절의 농촌에서는 늘 먹을 음식이 부족했다며 어린 우리들의 지난 시간이 마음 아팠을 어머니는 지금도 먹을 것 앞에만 서면 우리 얼굴을 떠오른다고 한다.


어느 날 어머니의 텃밭에 갔다. 때를 놓친 채소들이 웃자라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왜 제 때 채소를 솎아 먹지 않느냐고 했다. 그말에 채소는 때가 있는데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지을 것이지 왜 쓸데없이 힘들게 많이 지어서 다 버리느냐고 다구쳤다. 버르장버리 없는 딸의 말에도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말씀 하신다.


“느이들하고 같이 먹으려고 그러지. 난 느덜 먹는 입이 이쁜단다.”


옛날에는 잘 먹지도 못하고 컸는데 마당 옆에 과일나무라도 하나 심어들걸 그런 생각도 못하고 살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바삐 움직이는 손을 따라 채소 보퉁이는 점점 커 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계산은 항상 틀린다. 이제는 예전처럼 먹는 것에 한이 맺히지도 않고, 시장에 나가면 다양한 종류의 먹을거리가 널려있다. 입이 고급이 되었는지 채소나 과일을 많이 먹지도 않는다. 오히려 소식하려 애쓴다. 우리의 형제보다 우리 아이들의 숫자도 적다. 어머니의 계산방식으로 싸 주신 보퉁이 속의 채소와 과일은 언제나 남아돌고 먹는 음식에 아까움을 모른다.


채소에 대한 아쉬움을 모르는 나는 오늘도 내 시간표 속에 빠져 있었다. 아침에 온 어머니의 전화를 끊고 빠듯한 시간을 어떻게 쪼개어 어머니에게 갈 수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가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려 바라본 텔레비전 앞에서 나는 반성했다. 방송되는 프로그램 속의 아버지는 당신이 군대시절 편지를 한 통도 받아보지 못한 한으로 아들이 군대 간 동안 매일 편지를 써 보냈다고 했다. 어머니의 예전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은 열심히 텃밭농사를 지으신다. 당신의 힘으로 지은 농산물을 우리에게 주고 싶으신 거다. 이제 힘드니 농사는 그만 지으라해도 먹는 우리들 이이 예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우리들은 어머니가 농사지은 것을 잘 먹을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나이 많은 어머니 삶의 목표인 것을 이해해야하는데 늘 생각이 모자란다.


멀리 치악산을 바라보며 그 아래 고향마을을 생각한다. 서둘러 밀린 일을 마무리하고 어머니의 텃밭에 다녀와야겠다. 어머니의 커다란 보따리를 감사하는 마음을 받아와야겠다.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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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밭에 다녀 와 하루종일 고추와 다듬었다. 풋고추를 다듬어 겨울에 먹을 장아지를 준비하고 고춧잎을 다듬어 삶아 옥상에 널었다. 친정 엄마같은 동생의 지난 게절 수고를 생각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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