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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Aug 17. 2020

후배가 나를 존경한다고 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일의 성취와 기쁨, 나는 언제 일할 맛 나는가.

후배가 나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19는 여전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뎌지던 초여름, 오랜만의 기자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모처럼만의 기자 미팅으로 약간의 흥분이 가시지 않던 복귀 길이었다. 흥분이 가시지 않던 정확한 이유는 그날 만난 기자와 나눈 업(業)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본인이 다른 건 몰라도 '콘텐츠는 잘 써줄 수 있다'는 자신감 있는 기자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멋있다'라고 했다. 어쩌면 당연한 내 칭찬에 그는 '이일만 10년 했는데, 이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죠.'라고 응했다. 연차가 무색하게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이 미팅을 마치고도 진한 여운을 남겼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 미팅에 동석한 후배에게 말했다.


"오늘 만난 기자 멋있죠. 저도 10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진심이었다. 이제 8년 차인 나에게 기자의 그 한마디는 고요했던 마음의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느낌이었으니까. 연차의 숙성과 부패의 갈림기에서 지난한 숙성의 길을 걸어 맛있게 발효된 전문가를 만나니 내 커리어가 제대로 익고 있는지 생각이 많아진 셈이다.


혼란해진 머리와 마음은 무시한 채, 회사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후배의 말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네, 멋있네요. 그런데 제가 과장님 존경하는 것 아시죠."


응? 뭐라고 한 거지. 사회인의 관성에 이끌려 '나에게 부탁할 게 있나' 하는 의심이 고개를 쳐들 때, 후배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전했다. 나의 거듭된 사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내 나의 심쿵을 유발하는 멘트를 날렸다.


"진심이에요.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일을 쳐내고 지치지 않고 일하는지 궁금하면서도 존경스러워요. 어떻게 그렇게 하세요?"


동백꽃 필 무렵의 규태가 향미게 존경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말 그대로 심쿵이렸다. 후배의 종종걸음인 눈빛이 얼마큼 진심인가를 보여주고 있어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었다. 그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고, 같이 일하는 사람 힘 빠지지 않게 하려고 힘쓸 분이라고 얼머부리고는 회사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리에 앉아 언제나 그렇듯 '오늘의 할 일' 리스트를 보며 시간을 쪼개던 중, 이상한 데자뷔가 느껴졌다. 그래, 대리 시절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다.



대리님은 어떤 때 보람을 느끼세요?

3년 전 봄이었을까, 꽤나 똘똘한 후배가 들어와 신나게 일 하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신입치 고는 일처리가 빠르고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일의 진도가 빨랐다. 머리와 손이 빠른 후배와 일하는 건 내게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가 일하기 편한 후배는 다른 사람도 일하기 편한 후배였다. 공채 신입이었던 그는 여기저기 많은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쓰이면서 입사 3개월 만에 꽤나 많은 제안과정에 참여했다.


'참, 고단하겠다.' 싶으면서도 '잘 크면 좋겠다'는 마음이 공존하던 중 후배가 나에게 점심을 청했다. 보통 후배가 선배에게 점심 먹자고 할 때는 힘에 부칠 때이니, 마음을 단단히 하고 내 나름의 맛집을 데리고 갔다. 맛점을 하고 커피를 한 잔씩 들고 회사에 돌아오던 중,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대리님은 이 일을 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세요?"


'보람'이라. 부끄럽게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4년 차인데 아직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스스로가 민망한 마음에 그럴싸한 답을 찾느라 머리를 굴리다, 제안을 수주했을 때라고 답했다. 내 대답에 후배는 약간 당황스럽다는 듯이, 평소와는 다른 격양된 목소리로 답했다.


"제안을 딴다고 대리님한테 돈 더 주는 거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일이 더 생기는 건데, 제안을 수주했을 때 보람이 느껴지세요?"


어차피 지어낸 보람의 순간이었을까, 딱히 받아칠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그러려니 하고 다음 화제로 넘어갈 거라 여겼만. 웬일인지 후배가 집요하게 파고든다. 역시나 논리도 설득할 근거도 없다 보니, 약간의 짜증과 분노가 솓아올랐다. 항상 말하지 않는가, 직장에서 상사가 화를 내는 이유는 대부분 모르거나 할 말이 없어서라고.


" 그러게요, "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는 뉘앙스를 가득 담아 짧게 대답을 마치니, 어느새 회사 1층에 도착했다. 잘 먹었다는 후배의 인사말을 뒤로한 채,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그리고는 잠깐 멍을 때렸다.


'나는 왜 이일을 하지? 내가 진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오늘의 할 일을 적은 메모장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다, 3분은 흘렀을까? 고객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다시 일상 복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 전 정리하는 오늘의 할 일 체크리스트 중 아직  ok 표시를 얻지 못한  '한 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언제 보람을 느끼지?'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놓은 그 한 문장이 커서를 깜빡인 채  모니터를 끄려는 내 손을 붙잡는다. 마음을 다잡고 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퇴근길, 불쾌한 찝찝함이 떠나질 않았다.

 

"고민해봤나요, 당신이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


이 찝찝함의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후배에게 멋있는 답변을 날리지 못한 아쉬움일까, 혹은 곧 후배가 퇴사를 고할 것 같은 감이 발동해서일까? 단념하려던 중 불쾌감의 이유를 발견했다. 고민해본 적 조차 없어서였다. 어느덧 '대리'이고 사회생활 연차로는 5년 차인데, 내가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 무엇이 내게 중요한 가치인지 고민해보지 않았다니. 당혹스러움이 뒷목을 감쌌다.  


보람과 가치는 바뀔 수 있다. 현재의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서. 그런데,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건 문제였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 해내야 하는 일에 집중하느라 작 나만의 KPI는 고민해본 적조차 없다니.  지난 5년간 나는 스스로의 성과 지표도 없이 고객사의 피드백과 월간 업무 성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시간을 보낸 셈이었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어떨 때 기분이 가 좋은가.


쉽게 말해 일할 맛 난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5년 전에 받았던 그 질문에 벌써 과장인 나는 답할 수 있는가. 아직도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는 내가 이리도 초라하게 보이다니.


그때나 지금이나 일할 맛 나는 모멘트를 찾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고민의 끝에 든 생각은 결국, 성취의 순간은 그 성취 자체보다 내가 규정한 기준에 따라 발견되어진다는 거다.  스스로 일 할 맛 나는 순간을 정하고 그 모멘트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모멘트를 다섯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었다. 참으로 소시민 직장인스러운 마인드가 뼛속까지 장착된 것인가 싶다가도 본래 알맹이는 초라하고 보잘것없어야 날 것 일터.  불만을 거두었다.


내 성취 모멘트를 보고 혹자는 '이번 생에 넌 월급루팡 되기는 글렀다'며 혀를 끌끌 찼다. 역시 이망생인가 싶기도, 약간 쪼들리는 순간들인가 싶어 자기 검열을 해보지만 사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소박해 보이는 순간이지만, 사실 소박하지 않고 당연해 보이는 일 들이지만, 정작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직장생활이니까. 당연한 위대한 순간들 속 일할 맛 나는 모멘트를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촌스러운 우리의 직장생활을 더 연명하기 위한 동아줄 일수도 있겠다.



다음번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언제 일 할 맛 납니까?'라고 묻는다면 당황한 기색 없이 응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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