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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Nov 16. 2020

리더십 파는데 어디 없나요

지극히 사적인 연차별 역량 커리큘럼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계발에 돈을 쓰지 않는 요즘이다. 스스로 이제 완성형 인간이라고 여긴 다기 보다 이제 갖고 싶은 역량은 딱히 돈을 투자해서 얻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서다. 돌이켜보면 영어는 말해 입 아프고 포토샵이다, 코딩이다 하며 몇 푼 안 되는 월급과 주말이라는 거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때가 아련하다.


사실 나는 지금도 자기 계발에 목을 맨다.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고(2일 차지만..)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복직한 지 1년도 안된 주제에 대학원 진학을 할 수는 없을까 기웃거리는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이쯤 되면 나의 욕심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헌데, 나는 왜 어떤 액션도 하지 못하는 걸까.


리더십 파는 데 어디 없나요


내년이면 7년 차에 접어드는 내가 요즘 가장 얻고 싶은 능력은 리더십과 전략적 사고다.


복직을 하고 보니 팀 내에서 나는 어느새 선임의 위치였다. 일명 최고참이랄까. 팀장님 다음으로 이 회사에 오래 다녔다는 이유 혹은 연차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허울 좋은 최고참 노릇을 하고 있다. 결정 혹은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주니어 시절에는 회사 다니는 재미 중 하나가 고객사 험담을 퍼부으며 한탄하는 거였건만. 이제 고객사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톱니바퀴를 돌리는 입장이 되다 보니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목에 걸린 듯 불편하다.


참내, 리더십이라 하면 취업준비생 시절 자기소개서 작성할 때 말고는 고민할 일이 없을 거라 여겼건만. 이제는 리더십도 토익 맛집처럼 학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지경이다.


근무 경력이 쌓이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내 현재와 미래에 필요한 역량과 스킬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거다. 학교를 다닐 때는 '1학년에는 공통수학을 2학년에는 수학 1' 이런 식의 커리큘럼과 최소 이수 기준이 있다. 하지만, 돈 받고 다니는 직장에서 그런 커리어 패스까지 바라는 건 욕심일지도. 누구도 친절하게 내 연차에 필요한 능력과 쌓아야 하는 역량에 대해 제시해주지 않기에 시간이 갈수록 개인의 역량 격차는 커지게 된다. 커져버린 역량의 격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의 커리어를 발효 혹은 부패시키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리해봤다. 각자 고객사에 치여 챙기지 못하는 우리의 연차별 필요 역량과 마지노선은 무얼까. 내 짧은 경험에 기반한 가이드라인이 누군가에게 기준이 된다는 게 두려우면서도 흥분되지만 감히 정리했다. 망망대해에서 흔들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한 줄기 빛이 어디든 육지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테니 말이다.



지극히 사적인 PR 에이전시 연차별 역량 가이드


 연차별 쌓아야 하는 직무 역량은 아기가 성장하는 신체 과정과 유사하다. 태어나 꿈적도 못하는 아가가 발을 꼼지락 거리고 시간이 지나면 물건을 잡는 등 손을 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맘마 마' 말을 하고 이내 사고를 넓히며 머리를 쓰지 않는가. PR 에이전시에서의 연차별 필요한 직무 역량도 비슷하다.


<1> 장그래는 플랫을 신고 달리나?

"힐 있는 구두 신고 오지 마. 르넷만 고생해."


첫 행사 날 들은 첫마디였다.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달려간 내 첫 행사는 포토행사였다. 뭣도 모르기에 마음이 무거웠고 일단 복장이라도 단정하게 입어야겠다는 생각에 반 면접 복장을 한채 행사장에 갔더랬다. 5센티가량의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입장했고 나를 본 과장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이내 던진 말이 구두를 신지 말라는 거였다.


'외부 행사에 구두 신고 온 게 한소리 들을 일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행사를 마칠 즈음, 하이힐을 신고 오지 말라는 말을 왜 미리 해주지 않았는가 과장을 속으로 원망했다. 포토라인을 정리하고 기자들 요청사항을 정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구두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사실 행사장뿐만 아니라, 신입시절에는 힐을 신고 다니지 않는 게 몸과 마음에 이롭다. 이 말은 즉슨, 가벼운 발로 많이 경험하고 뛰어다녀야 할 때라는 거다. 매거진 라운딩, 기자 미팅, 행사장 f/u, 기자간담회 등 행사장에서 신입이 하는 역할은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 수다. 두 발로 뛰는 미디어 행사는 생각보다 기회가 많지 않을 수 있다. 고객사 입장에서 예산을 요구하는 PR 이벤트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차가 낮을 때 이런 기회를 가능한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각 섹터에서 어떤 액션을 해야 하는지 몸으로 경험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2>  손이 4개였으면 좋겠다.

대리 시절, 내가 버릇처럼 하던 말은 '손이 4개였으면 좋겠다'라는 거다. 혹자는 대리가 '대신 일해주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통 고객사 관련 문서작성 초안은 팀 내 대리가 도맡는다. 즉, 써내야 할 문서의 양이 많아진다는 거다. 보통 리테이너의 경우, 월별로 작성되어야 하는 최소 문서 리스트가 다음과 같다.

- 월간 고객사 미팅 회의록

- 월간 플랜

- 월간 결과보고

- 미디어 자료(보도자료, 기획자료 등)

- 프레스킷

- 미디어 f/u 자료

- 기자 미팅 리포트


이 문서들의 대부분은 대리가 초안을 작성한다. '초안'은 물론 검토가 필요한 문서지만, 분명 상사는 '검토'를 하고 싶지 '수정'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에 여기서 '이 대리 일 잘하네, 못 하네'가 갈린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문서는 이미 회사별로 사용하는 양식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서는 양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일목요연한 구성과 내용이 정리되지 않겠는가. 문서 작성 노하우는 너무나 많은 전문가들이 강의와 서적을 통해 침 튀기며 말하기에 필요하다면 스킬적인 면은 쉽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거다.


<3> '입'이 틔어야 한다.

고객사, 기자, 외주사 등의 이해관계자와 협의를 시작하는 연차가 4~5년 차다. 즉, 구두 커뮤니케이션이 많아지는 연차다. 잊지 말자. PR은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일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말'은 한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 '말을 잘한다'는 건 좀 다른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있어빌리티를 가지고 얼마만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냐에 문제다.


있어빌리티를 뿜어 내기 위한 접근으로는 다양한 것이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해와 지식'이다. 정확히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경험치를 기반으로 한 전문지식'이다. 여러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정확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어느 편이 더 일을 수행하는데 효율적인 입장인지에 대한 판단과 협의를 해야 한다. 부족한 이해는 잘못된 전달을 낳고, 잘못된 전달은 그릇된 결정을 만들기에 중간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이 역할은 실무 진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입이' 트는 과정부터가 단순 강의나 수업 등의 스킬 업 교육으로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물론, 스피치 강의류의 수업을 듣는 게 도움을 될 수 있겠다만 강의 한 두 달 들었다고 누구나 달변가가 될 수는 없다. 또, 강의의 내용들도 대부분 '스피치 "기술"'과 관련된 것이지, 상황에 맞는 판단과 톤 앤 매너를 가르쳐주는 것은 아닌지라 적용에도 한계가 있다. 즉, 여기서부터는 역량이 눈에 띄게 갈리기 시작한다.


그럼, 조금 더 원활한 과장 적응을 위해 내가 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신입시절 때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바로, '스크립트' 쓰기. 물론, 신입 때처럼 대사를 적는 수준의 것은 아니었지만 시나리오별 말해야 하는 포인트를 정리한다. 고객사가 난감해야 할 경우 사용해야 하는 설득 포인트와 고객사가 강하게 거부할 경우 이야기해야 하는 포인트를 정리해 놓고 통화 버튼을 누르는 식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이렇게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스스로 마음이 편해지는 건 분명한지라 중요한 통화전에는 시뮬레이션에 기반한 토킹 포인트를 정리하는 걸 추천한다.


<4> 고객사에는 '머리'를 팀원에게는 '어깨'를 내민다.

아직 이르지 못한 연차이지만, 10년 차 이상 PM이 되면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 주변 상사들을 보며 느낀 건 '전략적 사고'와 '동기부여' 역량이다. 단어 자체도 경영학 수업에서나 들어봤음직하건만 무슨 말일까.


우선, PM이 되면 해당 프로젝트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업무 추진을 위한 팀원들 독려를 해야 한다. 이 동기부여라는 것은 검토를 통한 평가, 그리고 피드백을 통한 교육 등의 다른 사람의 성과를 키워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다. 적어도 내가 만난 PM들은 그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발을 동동 구를 때는 한 발자국 뗄 방향을 알려 줬고, 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됐을 때는 신경 쓰지 말라며 어깨를 내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략적 사고다. 사실 고객사의 요구를 들어주는 건 어렵지 않다. 그냥 '까라면 까'라는 마음으로 충실히 요구를 충족시키지만 해도 달성 가능하다. 다만, 고객사의 요구가 전체 프로젝트의 성과 달성에 부합하는 요구인지를 판단해 쳐낼 것과 수용할 것을 가르는 것이 필요하다. 고객사는 단순 홍보 용역을 받고자 우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신을 갖고 싶어 제삼자인 에이전시를 쓰는 거다. 에이전시가 고객사의 '을'이 되느냐 '컨설턴트'가 되느냐가 바로 이 PM의 역량에 달린 셈이다.


정리하면, 신입시절에는 발이 가벼워야 하고 2-3년 차에는 보고서를 잘 쓸 수 있는 손이 필요하다. 메인 AE로서 활동하는 4~5년 차가 되면 고객사 혹은 외주사와 커뮤니케이션 및 협의를 해야 하니 '입'이 틔어야 한다. 나아가 발로 뛰고 손과 입을 놀리는 팀원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깨가 돼야 하며 그 이후에는 전체 몸을 통제하고 이동방향을 설정하는 머리가 되어야 한다.


연차에 따른 필요 역량은 공평하면서도 융통성이 없는 성질의 것이다. 입사 초반에는 개인이 보유한 알량한 스킬 혹은 자질로 조직의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마저도 '신입치고 빠릿빠릿하다''대리 치고 손이 빠르다.' 정도다. 하지만, 연차가 좀 쌓이는 시점부터는 다르다. 연차가 쌓이는 시간 동안 꾸준히 듣고 보고 깨닫는 이들만이 그 연차에 맞는 역량을 제때 가질 수 있다. 참으로 지난하지만 공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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