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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Nov 23. 2020

33살에 상사 앞에서 눈물바람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하기를 잘했어.

회사에서 눈물은 절대 금기 사항중 하나다. 눈물을 흘릴 바에야 화장실로 도망가겠다는 것이 나의 신념(?) 이건만. 9년의 회사생활 동안 벌써 두 번 눈물을 보였다.


당시에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돌이켜보면 나쁘지 않았다. 두 번의 눈물 모두 그 이유를 고민했을 때, 내가 마주하기 싫은 내 모습을 자의 혹은 타의로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두렵거나, 창피하거나.


그래도 필연 혹은 우연으로 발생한 일을 곱씹어보니 얻게 될 마음속 결론 들이 싫지 않았다. 다시 눈물이 터져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할 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울게 되었는가'에 대해 고민한 결과 얻게 된 내 깨달음이 오늘 본인도 모르게 흐른 눈물에 죄책감을 덜어 주길 바란다. 혹은 잠들기 전 이불 킥을 덜어줄 수 있을지도.


 

#33살에 상사 앞에서 눈물바람이라니


코로나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봄날,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연신 한숨이 나고 머리가 아프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게 아닌가. 원체 코로나 증상이 일반적이라면 일반적인 증상을 동반하다 보니 걱정이 밀려왔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재택근무까지 반납한 채 이러고 있는가 하는 억울함이 밀려오더니 코로나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밀려왔다.


사무실 입구로 내려가 체온을 측정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확인한 체온은 '35.8도.' 응?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심장이 다시 쿵쿵 거리는 것 아닌가. 심호흡을 하고 메일함을 확인하던 중, 고객사의 클레임이 그득 담긴 메일을 읽고 이 두근거림의 실체를 마주했다. 두려움이었다.


당시 나는 나를 비롯 회사 누구도 해보지 않은 해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항상 든든하게 조언을 구할 수 있던 다른 업무들과 달리 이 업무는 해본 사람이 거의 없어 업무 한 걸음 떼기에 여간 쉽지 않았다. 업무 프로세스와 운영 체계부터 구축한 다는 것은 꽤나 많은 시간과 리소스가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방향이 맞는지를 알 수 없어 일을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A 프로젝트 말고도 나는 4개의 고객사를 더 맡고 있었다.


물론 다른 4개의 고객사는 내 리소스가 적었다. 하지만, 동료가 작성한 자료를 검토하고 고민하는 것조차 나에게는 큰 인풋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이 5개의 고객사를 다 핸들링할 수 있을지. 고민과 답답함으로 얼룩지던 매일을 보내던 중, 고객사의 클레임성 메일 한 통은 내 두려움에 불을 지폈고 겨우 부여잡고 있던 내 멘털은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상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00님, 바쁘시겠지만 잠시 가도 될까요?'


상사는 대수롭지 않게 오라 했고 나는 자리에 연신 마스크로 가려진 입을 가리며 내 증상과 상황을 털어놨다. 그런데, 이게 웬걸. 호흡이 가빠지더니 눈앞이 뿌옇게 되는 것 아닌가. 맞다. 눈물이 터져 나온 거다.



제길, 나이 서른세 살에 상사 앞에서 질질 짜는 꼴이라니. 한 번 터진 눈물은 통제되지 않았고 점입가경으로 꺼억꺼억 오열로 이어졌다. 뜻밖의 눈물에 당황한 듯한 상사는 아무 말 없이 나가더니 물을 가져왔다. 한참을 우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는 이내 위로를 건네더니 조기퇴근을 처방했다.


"르넷이 다 하지 말고 다른 프로젝트들은 팀원들이 주도하게 해요."


조기퇴근과 함께 처방된 디렉션이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일을 시키는 것도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는가? 방임이 아닌 관리를 위해서는 업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가이드를 줘야 하건만. 그것마저 노오오력이 든다는 걸 그가 모를 리 없건만. 그도 뾰족한 수가 없기에 그랬다는 걸 알지만 폭풍눈물과 함께 삐뚤어진 마음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처방받은 조기퇴근에도 나는 겨우 업무를 마무리하고는 택시를 잡아탔다. 막히는 퇴근길, 택시 뒷좌석에 몸을 뉘인 채 반짝이는 야경에 멍을 때리자 창피함이 몰려왔다. 하. 나이 서른셋에 상사 앞에서 눈물바람 이라니. 갈 때까지 갔다.


그제야 갑자기 우는 나를 보고 복잡 미묘했을 상사가 떠올랐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부랴부랴 아직도 마음이 복잡할지도 모를 상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카톡의 1이 없어지고도 한참 답이 없는 채팅창을 보며 또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술이 깬 후 전날의 실수를 되새김질하며 이불 킥을 하고 싶은 심정과 비슷했다.


드디어 도착한 그의 메시지.

'조심히 들어가요. 복직하자마자 너무 일 많이 줘서 미안해요.'

뜻밖의 위로를 접한 나는 깨달았다. 그래도 찾아가 말하기를 잘했다고. 말하기 전에는 모른다. 아니 말해도 못 알아듣는 경우도 다반사 이건만 말하지 않아도 내 어려움을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욕심 아닌가. 내일 당장 상사를 보기 민망할 것 같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택시 뒷좌석에 파묻혔다.




#치명상은 '쎈 말'이 아니라 '맞는 말'에서 온다.


사회생활을 하며 상사 앞에서 보인 내 첫 눈물은 뻔하게도 첫 회사였다. 내 첫 회사는 작은 콘텐츠 스타트업이었는데, 내가 1호 신입이었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온 제자에게 겨울방학 동안 일해 보라며 교수님 인턴으로 추천해줘 다니게 된 회사였다.


25살. 지금은 요원하기 짝이 없는 그 어린 나이에 처음 시작한 인턴이어서였을까.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남들 다 하는 인턴이라 시작했을 뿐,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그리고 나는 그 일이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1도 하지 않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숙고 없이 시작한 회사생활은 처참한 결과를 만들었다.


그렇게 인턴생활 2개월 수습 3개월이 끝이 났다. 정직 전환 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사장은 면담 겸 나를 근처 카페로 불러냈다. 분위기 좋은 동네 카페에 앉아 음료가 나오자 사장은 말을 꺼냈다.


"르넷, 이제 정직 전환인데 근무 태도가 계속 이러면 곤란해."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나온 나는 거침없이 들어온 훅에 눈만 깜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장은 내 잦은 지각, 적은 업무 열의, 낮은 업무 완성도 등을 조목조목 설명해주며 태도 개선을 요구했다. 멍하니 사장의 말을 듣고 보니, 꼭 실연당하는 여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이 떨어지더니 앞이 뿌옇게 보였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이기도 했다. 사장은 나를 달래더니 어색한 공기 속에 앞으로 잘하면 된다며 성급하게 자리를 마무리하고는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았지만 모니터를 켜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카톡으로 지금 있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떠벌리자니 내 불성실성을 고하는 꼴이었고 그렇다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멍하니 생각에 젖어들었다. 가장 궁금한 건 나는 왜 애처럼 울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물론 슬픈 영화를 보면 이따금 눈물을 흘리긴 하지만, 스스로 감정 컨트롤을 잘한다고 여겼기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왜 울었는가. 그가 한 말을 곱씹어보자 얼마 지나 답이 나왔다. 내가 친구들에게 토로하지 못한 이유와 맞닿아있었다.


'오늘 사장이 한 말이 다 맞는 말이라서.'

9시 정시 출근에 9시 3분 지각을 밥 먹듯 했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은 욕심에 했다.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쓰여야 할지 또는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드라마에서 보인 대로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왔다 갔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연륜이 많은 사장이었기에 평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내다보고 있었고 현실을 지적한 거였다.


결국,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서 운 거였다. 스스로에게 당당하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향적이지만 적어도 스스로 부끄러운 사람이 될지는 몰랐던 나에게 첫 눈물과 함께 깨달은 수치(恥)는 회사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다. 내가 회사에 무엇을 원하는지, 회사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할지에 대해 고민하자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었고 나름 주도적인 회사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 남는 장사였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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