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속에 숨을 뜻을 찾아서- 숙제하는 중
Friend 속 end
friend와 end의 상관관계는 언뜻 봐서는 찾기 어려웠다. 혹시 end에 ‘끝’이 아닌, 내가 모르는 다른 뜻이라도 있을까 하여 사전을 찾아보았다. end는 그저 끝일뿐이었다. 생의 끝을 마주하는 순간까지 이어질 우리 삶 속에 꼭 필요한 것은 친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내게 있어 친구란, 학창 시절에는 그저 옆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친구가 되었다. 20대 때는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 중 마음 맞는 이가 친구가 되었고, 결혼 후 육아를 할 때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가진 육아 동지를 친구로 삼았다. 삶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래도 제법 잘 살았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의 조건이라면 우선 사랑하는 가족과의 관계가 꽤 괜찮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마음을 나눌 친구를 곁에 두었다면 눈 감는 것이 그다지 아깝지 않을 인생이지 않을까?
lover 속 over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lover에는 over라는 단어가 숨어 있다. over란 “다른 사람 또는 사물이 덮이도록 위에”를 뜻한다. 눈에서 불꽃이 튀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그 뜨거움은 뭉근한 온기로 달여지는 사랑으로 변한다. 사랑하는 이의 장단점을 모두 알고 이해하는 것에 더해, 자신의 마음으로 그 상대를 덮이도록 감싸는 게 사랑일 것이다. 사랑의 완성은 측은지심이라고 했던가. 서로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까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접두사로써 over가 쓰일 때는 그 뜻이 약간 달라지는데 그것은 바로 ‘지나치게 많은’의 뜻을 나타낸다. 어느 한쪽의 ‘지나치게 많은 사랑’은 관계를 해칠 수 있다. 나의 사랑이 상대에게 ‘지나치고’ 있는지는 자신의 감정에 몰입되지 않고, 상대를 살피고 배려해야지만 그 정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life 속 if
life 단어 속에는 if가 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는 ‘만약에’란 없다. ‘만약에’가 만약 이루어지려면 타임머신이라도 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mbti ‘N’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만약에’를 즐기는 편이다. 만약 내가 이십 대에 주저했던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만약 내가 그 집을 이렇게 주택가격이 내리 전, 잔뜩 올랐을 때 팔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후회의 if도 있지만 안도의 if도 있다. 당장 어제의 일이다. 위가 아파서 위 내시경을 할지 여부를 두고 고민했었다. 결국 위 내시경을 받았고 뜻밖의 결과도 받았다. 위벽에 가로로 손가락 길이만 한 과일 꼭지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만약 내시경을 받지 않고 아픈 채로 며칠이 더 지났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위염은 위궤양이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소장으로 내려갔다면 수술을 해서 꺼내야 했을 거라고 한다. 수많은 if를 상상해 보지만 그것은 상상으로 그칠 뿐이다. 현실은 if만으로 바뀌지는 않으니까. 후회와 안도의 if가 아닌 희망의 if도 있다. 만약 지금처럼 건강하게 60대가 된다면 그때의 인생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believe 속 lie
believe에 lie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지독하게 모순적이다. 믿음 속에 거짓말이 숨겨져 있다니. 그것을 나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 아이의 작은 거짓말을 눈감아 주기도 한다. 그럴 때 ‘엄마는 우리 ㅇㅇ이 믿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lie가 숨겨진 believe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편, lie의 다른 뜻으로는 ‘눕다 ‘라는 뜻이 있다. 기대어 누울 만큼 믿을만한 대상이라는 뜻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believe에 lie가 들어 있는 것이 그다지 모순적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