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샌드

내가 기억하는 빵

Nov 22. 2024

나에게 다이어트할 때 식당보다 힘든 곳은 바로 카페이다. 맛있는 디저트들이 강렬하게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빵은 달콤함에서 짭짭함까지 그 스펙트럼이 참

기억 속 첫 번째 빵은 땅콩샌드이다.

삼립이던가 기린이던가. 슈퍼에서 파는 봉지에 든 땅콩버터샌드이다.

그때 당시 이 빵은 꽤 든든한 간식이었다. 요즘은 부드럽고 버터향 가득 나는 빵이 많지만, 그 시절의 빵은 요즘의 그것에 비하면 조금 투박한 편이었다. 그다지 쫄깃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식빵 두 조각 사이에 고소한 땅콩크림이 웅크린 채 뭉쳐져 있다. 빵의 한쪽 뚜껑을 열어 크림 상태를 확인한다.

위치파악 완료.

마주한 식빵 두쪽을 이용해 문질 문질 삭삭, 크림을 고루 펴준다. 그다음 준비물은 뽀얀 우유이다. 주둥이가 넓은 컵에 꼴록 꿀럭 우유를 가득 담은 후 입수 준비를 마친 땅콩크림빵을 반 가른다. 그 다음 한쪽을 푹 담근다. 2초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우유를 조심하며 입안 한가득 베어 문다.

꺼끄러운척 하던 식빵 표면은, 우유의 위로에 한껏 풀어져 입안에서 부드럽게 맴돈다. 강단 있게 우유를 밀어내던 땅콩 크림도, 어느새 모두에게 동화된 채 함께 녹아내린다. 그 맛이란 부드럽고 고소하며 달콤하다.

한 봉지를 뜯으면 땅콩샌드 두 개가 들어있었기에 매번 엄마와 하나씩 나눠먹었다. 그래서 이 빵이 머릿속에 떠오를때면 항상 엄마도 함께 떠오른다. 어린시절 즐겨 먹던 맛잇는 음식을 소울푸드라한다면 우유 젖은 이 빵이 내겐 소울푸드쯤 되는 것 같다.

나의 기억 속 두 번째 빵은 여행지에서 먹은 빵이다.

20대 초반, 홀로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평생을 함께 할 빵과 빵 친구를 만나게 된다.

낯선 곳에서 혼자 맞이하는 여행의 첫날 아침. 10월 중순의 런던은 긴장된 내 마음만큼 서늘했다. 아직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채 미어캣처럼 온 신경을 곤두서 있었다. 유스호스텔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나는 더 주눅이 들어버렸다.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기다란 나무식탁에 수 많은 외국인들이 앉아 있었다. 식당에 들어선 나를 쳐다본다. 파란 눈, 갈색눈들이 이방인의 등장을 호기심 있게 쳐다보는 느낌이랄까.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조차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숙소로 올라가고 싶을만큼 불편했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였기에 굶을 수는 없었다. 뭐라도 먹어야 했다. 따뜻한 커피, 따뜻한 코코아와 식빵, 딸기잼, 버터,시리얼등으로 차려진 음식을 보니 제법 허기도 올라왔다. 몇 가지를 들고 아무 곳에나 앉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친구라도 되는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어로 불어로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