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날, 마지막 빵.
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했다. 그들은 인간의 상상으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형체였다. 모든 빛과 그림자가 그들 속에서 얽히고설켜 있었다. 목소리는 없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전인류는 절멸할 위기에 봉착했다. 지구멸망까지 남은 시간은 24시간. 이 행성을 허물기 전에 외계인이 지구 인간들에게 마지막 관용을 베푼다. 너희들이 정말 좋아하는 디저트 한 가지와 음료수 한 가지를 선물로 주겠다. 그냥 속으로 외치기만 하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너희들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선택한 그 음식들을 맛보며 얌전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해하기 어려운 갑작스러운 선고에 얼어붙은 내 몸과는 달리, 나의 정신은 빠르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일까. 마음이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주변은 너무 평화롭고 고요했다.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들뿐이었다. 그 공포를 견딜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들이 건네주는 알량한 위로에 기대는 것뿐이었다. 서글픈 마음이 든다. 어느 날 죽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것이었구나.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게 통보하는 거구나.
"딸기 타르트, 따듯한 아메리카노."
나지막히 속으로 읖조린다.
집 앞 카페의 디저트 냉장고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 과일로 만든 타르트를 채워놓곤 한다. 나는 겨울이 오는 것이 싫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 숨이 하얗게 얼어붙는 아침, 그리고 끝도 없이 짧아지는 낮이 싫다. 하지만 그 계절에 내가 기대하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바로 겨울이 제철인 딸기로 만든 그 카페의 딸기타르트다.
버터가 잔뜩 들어간 바삭한 타르트 지 위에 몇 겹의 레이어로 쌓여져 있는 각기 다른 텍스처의 필링들. 그 위에 올라가 있는 크림필링은 느끼하지 않으면서 달콤하다. 그 위에 딸기를 주르륵 얹어두고 마치 눈이 소복이 온 것처럼 살살 슈거파우더를 뿌려놓는다.
추워서 장갑을 끼지 않으면 걸어갈 수 없는 얼음장 같은 날씨에도, 그 카페의 진열대에 딸기 타르트가 전시되는 날에는, 결국에는 들러서 한 조각 사들고 내어놓은 한쪽 손이 칼바람에 시리다 못해 아파지더라도 상자를 꼬옥 쥐고 오들오들 떨며 몸을 움츠리고 집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타르트 가격은 한 조각에 7500원. 두 조각을 사면 15000원. 세 조각을 사면...
야속하게 비싸져 버린 물가를 탓하며, 매번 한 조각만 겨우 사서 집에 와 가장 예쁜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우리 가족들은 식탁으로 포크를 들고 나와서 , 오순도순 도란도란 그 작은 조각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곤 했다. 나는 커피를 한 잔 내려서, 한 모금 마시면서 조용히 그 포크질에 동참을 한다. 부족한 양에 가족들은 빈 접시를 보며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되지만, 그 모자람이 있기에 이 혹한의 계절에도, 양보하는 한 입에 따듯함을 더 느낄 수가 있는 것이었다. 빈 접시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자며 서로 등을 토닥여주기도 했다.
어느새 눈 앞에는 커피 한 잔과, 딸기 타르트 한 조각이 놓여있었다.
쓰디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눈을 감고 씁쓸한 그 맛을 입안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여 천천히 음미하며, 차분하게 스스로를 가라앉히려 애써본다. 마침내 눈을 뜨고 죽음 앞에 와서야 온전하게 한 조각을 다 먹을 수 있게 된 딸기 타르트에 포크를 살포시 가져다 댄다. 딸기를 살짝 비켜가 크림을 부드럽게 가르고 내려가 단단한 타르트지에 닿는다. 조금 힘을 주어 부서트린다. '바삭' 소리가 나며 작은 부스러기가 푸스스하고 접시 가장자리로 흩어진다. 살살 포크로 떠내듯이 한 조각 들어 올려 천천히 입에 넣어보니, 그 부드럽고 달고 상큼한 맛이 혀 위에서 사르르 번져간다.
그 순간, 모두가 같이 나누어 먹던 행복한 추억이 떠오른다. 격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온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걷잡을 수 없이 커다래진 슬픔이 흘러내린다. 포크를 내려놓고, 두 손을 얼굴에 포개어 멈출 수 없는 눈물을 닦아낸다.
달콤한 죽음 같은 한 입, 한 입으로 끝끝내 접시를 비워냈을 때,
드디어 예고했던 그 시간이 다 되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나의 생의 모든 장면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너희와 거닐던 하얗게 눈이 내린 집 앞 산책로부터, 기대어 앉아서 너희들이 노는 것을 지켜봤던 벤치도, 따듯한 저녁을 지어먹던 부엌도, 가족들이 모두 오순도순 모여 영화를 보던 거실도. 젊은 시절, 당신과 뜨겁게 사랑의 언어를 속삭였던 그 골목길까지...
벼락같이 내려진 멸망의 선고에 아름답게 부서져버리는 찬란한 마지막 지구의 주홍 불빛을 끝으로.
내 몸도 산산히 분해되어 간다. 나는 다시 돌아간다. 내가 태어난 곳으로. 어쩌면 우주의 품 속으로.
안녕. 내 사랑들.
안녕. 천국에서 만나.
죽음은 늘 예고 없이 우리에게 찾아오지요.
마치 외계인의 선고처럼요.
언젠가 만나게 되고야 말 그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딸기 타르트처럼 달콤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