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마다 호빵 먹으면 천국 같을 거 같아요
"엄마 친구들이랑 집에 가서 놀아도 돼?"
"지금? 그래 알았어."
휴우, 어쩐지 오늘 대청소를 하고 싶더라니. 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 옆동에 다온이 엄마가 살았다. 딸은 다온이와 단짝처럼 지냈는데, 다온이네가 1층이라서 놀러 가기 좋다고 했다. 그래도 너무 자주 가는 건 실례라고 했더니, 다온이 언니 친구들은 매일 놀러 간다고. 어디 아이들에게 집을 내어주는 게 쉬운 일이랴. 힘드시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러려고 1층에 이사 왔다고 했다. 특히 겨울에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기도 춥지 않겠냐며 집이 젤 안전하고 따뜻할 거라고 했다.
그녀의 따뜻함을 닮고 싶다. 1층이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아이들이 친구들을 데려온다고 하면 웬만하면 허락해야지. 잠시라도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다. 지난 7월, 새로운 동네로 이사오며 아랫집에 인사를 갔는데, 미취학 꼬맹이들이 반겨주었다. 같이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라 이해할 수 있다며 편히 살자고 했다. 너그러운 분들을 만나 다행이다.
"아줌마 이 호빵 먹어도 돼요?"
"어 그거 내 글감인데, 응. 데워 먹어. 그 대신 감상평 써줘야 해."
"네? 네."
오늘까지 겨울 빵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기에, 아이들에게 팁을 좀 얻을까 미끼를 던져두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신유빈의 광고가 계속 돌고 있었기에 군침을 흘리며 올라왔으리라. 학교 바로 끝나고 학원 가기 전, 딱 그 시간. 궁금하고 출출할 때 테이블 위의 호빵 한 박스. 안 물고 못 배기지.
제목: 삼립 호빵
지은이: 초등학교 4학년 딸 친구
먼저 크기가 적당해서 출출할 때 먹기 딱 좋고.
안에 팥이 가득 차 있어 맛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빵이 쫀득해서 맛있어요.
(그리고) 따뜻하고 달달해서 너무 맛있어요.
겨울마다 호빵 먹으면 천국 같을 거 같아요.
겨울엔 호빵이지. 이 문장 하나로 시작한 글이 희망이 보인다. 김장김치랑 먹어보라는 억지를 써 내려가볼까 했었는데, 이 친구의 글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노라니, 5개 문단의 중심문장만 딱! 써놓은 느낌. 고마워, 친구야. 아줌마 브런치 이 글이 라이킷 50개 넘으면 올 겨울 우리 집 호빵 무제한권 쏜다.
맛있는 빵은 많지만, 빵이 너무 비싸서 잘 사 지지가 않는다. 밥대신 먹는 빵이야 식비 지출을 배정해 보겠는데, 밥 다 먹고 디저트 또는 간식으로 먹는 잉여 빵에 밥값보다 더한 비용을 내기에는 아무래도 나는 짜다. 한번 세게 아파 본 사람으로서 그런 밥배빵배 행위가 건강에 이로울 게 없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빵은 빵다워야 하지 않겠나. 크기도 가격도 적당해서 딱 좋은 호빵처럼.
하얀 속살을 부드럽게 열어젖히면 응큼하게 가득 찬 단팥이 둥둥 심장을 친다. 고기, 야채 등이 다양한 소스를 껴입고 창의적인 연주를 하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쌀쌀한 초겨울 내 마음의 귀를 달래주는 건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팥앙금. 안에 가득 차 있는 팥의 볼륨이 정말 감미롭다.
호빵을 가장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은 찜통에 찌는 것이다. 얼었던 호빵도 물이 끓으면서 더욱 촉촉하고 부드럽게 그 속마음까지 녹일 테니. 그러나 호빵하나 먹겠다고 언제 냄비 꺼내고 찜기 닦으랴. 전자레인지가 딱이다. 더욱이 ’호빵 스팀팩'이라고 한봉에 하나씩 40초만 데우면 되는 '봉지째 렌지업' 상품이 나와서 더욱 쫀득하게 호빵을 즐길 수 있다.
'호호 불면서 먹는 빵'이라서 '호빵'인 것을 아는가? 1969년 삼립식품에서 처음 출시될 때, 창업자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브랜드 이름이 제품군 자체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다. 딤채=김치냉장고처럼. 호빵은 그만의 그 따뜻한 온도와 부드러운 식감으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겨울을 데웠으리라. 따뜻하고 달달해서 너무 맛있는 겨울 빵의 대명사.
올 겨울도 유난히 추울 거라고 한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물가 때문에 더욱 시리겠지. 오늘도 장바구니의 큰 공간을 작은 값으로 채워주는 고마운 호빵. 올 겨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기를.
겨울마다 호빵 먹으면 천국 같을 것 같다고? 그 천국 아줌마가 만들어줄게요. 자주 놀러와 같이 호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