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갑옷을 벗고 돌아온, 2035년의 '꼬마자동차 붕붕'
1부에서 나는 2019년 <Project Egg Drop>을 기획하며 꿈꿨던 4가지 '황당한' 가설을 이야기했다. 차 안을 거품으로 채우거나, 차가 고무공처럼 변하거나, 외부 에어백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는 차.
당시엔 "영화 같은 소리"라며 폴더 깊숙이 묻어두었던 그 아이디어들을,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나는 리서치 과정에서 지구 반대편의 수많은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린 시절 사랑했던 만화 <꼬마자동차 붕붕>도 그렇지 않았던가. 붕붕이는 딱딱하고 무서운 강철 기계가 아니었다. 둥글둥글하고 말랑말랑하며,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사람의 친구였다. 나의 상상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가 꿈꾸던 미래의 차는 '아이언맨'의 차가운 슈트가 아니라, '붕붕이'의 부드러운 온기를 닮아가고 있다.
물론 나의 상상이 100% 현실이 된 것은 아니다. 어떤 기술은 모터쇼의 콘셉트카로 남았고, 어떤 스타트업은 여전히 R&D 단계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충격으로부터 인간을 완벽하게 격리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누군가는 계속해서 바위를 굴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했던, 의미 있는 5가지 시도들을 소개한다.
1) 내부 충전 : 죽스 (Zoox)의 코쿤 에어백
아마존의 자율주행 자회사 죽스(Zoox)는 운전석이 없는 객차형 로보택시를 만들며 새로운 에어백을 고안했다. 바로 천장에서 내려와 승객을 'ㄷ'자 형태로 감싸는 '말발굽형 에어백'이다. 비록 내 가설처럼 거품을 쏘는 방식은 아니지만, "빈 공간(Void)을 채워 승객을 고치처럼 보호한다"는 본질적인 접근은 유사하다.
2) 외부 방어 : ZF의 프리 크래시 에어백
독일의 부품 명가 ZF는 오래전부터 차량 측면에 내장된 '외부 에어백'을 연구해 왔다. 충돌 직전 차체 밖에서 에어백을 터뜨려 충격 에너지를 미리 흡수한다는 개념이다.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맞고 버티는' 수동적 안전에서 '안 맞게 해 주는' 능동적 안전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도다.
3) 이타적 안전 : 뉴로 (Nuro)의 보행자 에어백
안전의 대상을 탑승자 밖으로 확장한 시도도 있다. 뉴로(Nuro)는 배송 로봇 전면에 푹신한 패드나 에어백을 장착해, 충돌 시 보행자를 보호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내가 기획안에서 가장 우려했던 "기계가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성"을 제거하려는 가장 윤리적인 엔지니어링이다.
4) 물성의 변화 : 도요다 고세이의 Flesby
가장 파격적인 시도는 일본의 도요다 고세이가 선보였던 콘셉트카 'Flesby III'다. 차체를 금속이 아닌 'e-Rubber(e-고무)'로 덮어, 충돌 시 차가 고무공처럼 충격을 흡수하고 복원된다는 상상력을 보여줬다. 비록 콘셉트 단계의 시도였지만, "자동차는 딱딱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던진 묵직한 돌직구였다.
5) 구조의 혁신 : 다이버전트 3D의 생성형 디자인
다이버전트 3D는 AI를 이용해 자연계의 뼈 구조를 모방한 차체를 3D 프린팅 한다. 필요한 곳은 강하게, 충격을 분산해야 할 곳은 유연하게 설계한다. 이러한 제조 공법의 혁신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상상했던 '충돌 시 캐빈이 분리되는' 급진적인 구조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는 소재를 바꾸고, 누군가는 구조를 비틀며, 누군가는 에어백의 위치를 바꿨다. 이 모든 시도가 당장 내일의 양산차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이러한 실패와 성공의 데이터들이 쌓여 우리는 결국 '제로 사망(Zero Fatality)'이라는 종착지에 닿게 될 것이다.
자, 이제 이 기술들이 무르익어 상용화된 2035년의 미래를 상상해 보자. '절대 안전'이 보장된 세상에서는 단순히 사고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송두리째 바뀐다.
풍경 1: 비명 대신 웃음이 터지는 출근길
오전 8시 강남대로. 자율주행 셔틀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달리다 급하게 끼어드는 배달 로봇과 부딪힌다. "펑~" 마치 거대한 풍선 두 개가 부딪히는 듯한 둔탁하고도 경쾌한 소리가 전부다. 두 차량의 외부는 순간적으로 마시멜로처럼 물렁해지며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탱하고 원래대로 돌아온다. 차 안에 타고 있던 김 대리는 놀라서 창밖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아, 깜짝이야. 진짜 범퍼카 같네." 교통사고는 이제 공포가 아닌, 출근길의 사소한 해프닝이 되었다.
풍경 2: 무단횡단이라는 죄목의 소멸
스쿨존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다 도로 위로 뛰어든다. 하지만 경적 소리는 없다. 차들은 아이 앞에서 스스로 전면을 '보행자 보호 쿠션' 모드로 바꾸고 부드럽게 멈춘다. 부딪혀도 푹신한 소파와 다를 바 없다. 도로와 인도를 가르던 흉물스러운 철제 펜스는 사라졌다. 차가 흉기가 아니게 된 세상에서, 도로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공원의 연장선이 되었다.
풍경 3: 집이 굴러다니는 시대 (Mobility as a Living Space)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자동차'와 '부동산'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의 자동차는 매연을 내뿜고 위험한 쇳덩어리였기에 주차장이라는 격리된 공간에 둬야 했다. 하지만 이제 차는 푹신하고(Soft), 깨끗하며(Electric), 절대 안전하다(Zero Fatality). 굳이 밖에 둘 이유가 없다.
2035년의 아파트 베란다 창문은 도로와 연결되는 '도킹 스테이션'으로 변했다. 퇴근길, 나의 자율주행 포드(Pod)는 아파트 외벽을 타고 올라와 우리 집 거실 창문에 '찰칵' 하고 결합한다. 차 문이 열리면 거실이 확장된다. 차는 더 이상 이동 수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방(Moving Room)'이 되었다.
아이들은 자기 방(포드)에서 잠든 채로 부산 할머니 댁으로 이동한다. 눈을 뜨면 창밖 풍경만 바뀌어 있을 뿐, 내 방 침대 위다. "차 조심해라"라는 부모님의 잔소리 대신, "오늘 네 방 어디로 보낼 거니?"라는 질문이 일상이 된 세상. 안전이 완벽해지는 순간, 이동은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공간의 확장이 된다.
2019년, 내가 <Project Egg Drop>을 상상해 보며 가장 아쉬웠던 것은 우리 사회가 '죽음'을 너무나 당연한 비용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차를 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날 수도 있지."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는 거지."
우리는 수십 년간 이 무책임한 명제에 동의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은 '사고를 막는 것'보다 '사고 났을 때 누구를 살릴지'를 고민하는 트롤리 딜레마 같은 잔인한 질문에 매몰되어 있었다.
하지만 '죽지 않는 차'가 상용화된 미래에서 돌아보니, 그건 틀린 질문이었다.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어야 했다.
계란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릴 때, 우리는 계란에게 "알아서 잘 떨어져 봐"라고 하지 않는다. 깨지지 않도록 푹신한 포장재로 감싸고 또 감싼다. 인간의 생명은 계란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동안 인간을 얇은 철판 상자에 태워 시속 100km로 달리게 했을까?
미래의 아이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2020년대의 딱딱한 쇳덩어리 자동차를 보며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옛날 사람들은 저런 딱딱한 걸 타고 다녔어요? 부딪히면 아픈데, 왜 저렇게 위험하게 살았어요?"
나는 그 아이에게 웃으며 대답해주고 싶다. "그래서 우리가 바꿨단다. 이제는 아무도 아프지 않게."
안전은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운에 맡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술로 증명해야 할,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