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아무도 죽이지 않는 차 (1/2)

트롤리 딜레마는 틀렸다: '절대 안전'을 향한 기록과 미래

by 미래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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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개봉한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SF 영화, <데몰리션 맨(Demolition Man)>을 기억하는가?


냉동 감옥에서 깨어난 옛날 형사(스탤론)가 미래의 경찰차를 타고 가다 충돌 사고를 내는 장면이 있다. 쾅! 하는 순간, 차 안에서 순식간에 회색 거품(Secure-o-Foam)이 뿜어져 나와 탑승자를 젤리처럼 감싸버린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기계음. "안전이 확보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와, 미래에는 차 사고가 나도 절대 안 다치겠구나."


그 기억은 20여 년이 지나 나를 다시 찾아왔다. 2019년, VC로 일하던 나는 문득 이런 의문을 품게 되었다. 자율주행 기술은 발전하고 있는데, '왜 여전히 우리는 차 사고로 다칠까?' 완벽한 자율주행이 오기 전까지, 사고가 나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차를 만들 수는 없을까?



"창업은 꿈꾸지 않는다"던 나를 흔든 질문


VC라는 직업은 창업자들의 피와 땀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자리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심사역님은 창업해 볼 생각 없으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늘 손사래를 치며 답하곤 했다. "패밀리사 대표님들이 얼마나 힘들게 고생하시는지 너무 잘 아는데, 감히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엄두도 안 납니다."


이건 빈말이 아니라 뼈저린 진심이었다. 창업의 무게를 알기에, 나는 창업은 내 길이 아니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Project Egg Drop(계란 낙하 프로젝트)'이라고 이름 붙인 이 아이디어만큼은 달랐다.


높은 곳에서 계란을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게 보호하는 과학 실험처럼, 사람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차를 만드는 것. 이 문제만큼은 "누군가 풀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라도 풀어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들었다. 그만큼 '교통사고 제로'는 기술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매력적인 숙제처럼 보였다.



내가 모럴 머신을 풀다가 멈춘 이유


자율주행 업계에는 '트롤리 딜레마'라는 풀리지 않는 윤리적 문제가 존재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MIT의 '모럴 머신(Moral Machine)' 프로젝트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율주행차가 사고 직전 누구를 희생시켜야 할지 묻는 이 실험은 꽤 유명하다. 나는 최근 이 사이트에 다시 들어가 직접 테스트를 해보았다. 화면에는 총 13개의 끔찍한 시나리오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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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가 고장났습니다. 직진해서 장애물에 부딪히며 운전자와 동반 탑승자를 희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핸들을 틀어 길을 건너는 아이와 어른을 희생하시겠습니까?"


나는 첫 번째 문제에서부터 마우스를 멈추고 말았다. 도저히 어느 쪽이 맞다고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화면 앞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0.01초의 긴박한 순간에 AI가 이를 판단하게 한다?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이 실험에 참여해 4,000만 건 이상의 답을 냈지만, 결국 '인류가 합의한 정답은 없다'는 결론만 남았다. 문화권마다, 개인마다 윤리적 기준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신했다. "우리가 AI에게 윤리를 가르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딜레마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를 선택하는 알고리즘을 짜는 게 아니라 딜레마의 전제 자체를 물리적으로 없애버리는 것이다.


"5명을 칠 것이냐, 1명을 칠 것이냐 고민하지 말자. 그냥 부딪혀도 아무도 안 죽게(Zero Fatality)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못생길 자유가 가져온 기회


나는 MaaS(Mobility as a Service) 시대가 오면 비로소 이것이 가능하다고 봤다.


자동차 제조사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팔리는 차'를 만드는 것이다. 수천만 원짜리 고가품을 개인이 지갑을 열어 사게 하려면 성능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디자인이다. 남들 보기에 멋져야 하고, 날렵하게 잘 빠져야 한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차를 뚱뚱하게 만들거나 범퍼를 기괴하게 늘리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다.


하지만 미래의 자율주행차는 다르다. 그건 소유하는 '내 차'가 아니라, 잠시 빌려 타는 '서비스'일뿐이다. 우리가 지하철을 탈 때 열차의 외관 디자인을 따지는가? 급하게 택시를 잡을 때 차가 예뻐서 골라 타는가? 아니다. 그냥 빨리 오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만이다.


소유의 시대가 저물고 접속의 시대가 오면, 자동차는 '멋짐'이라는 오랜 강박에서 해방된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못생겨도 안전한 차", **"투박하지만 절대 죽지 않는 차"**가 허용되는 진짜 엔지니어링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나는 업무상 기계공학 교수님이나 충돌 시뮬레이션 전문가 등 관련 분야의 석학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회의 말미에 틈틈이 이 아이디어를 꺼내 묻곤 했다. "박사님, 만약 디자인 제약이 없다면 이런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 대화들 속에서 다듬어진 나의 4가지 가설은 다음과 같았다.



나의 4가지 가설 : 상상 속의 'Egg Drop'


가설 1: 내부 충전 (Internal Foam) - "데몰리션 맨의 현실화"


영화처럼 사고 순간 차 내부의 빈 공간(Void)을 0.01초 만에 메워버리는 것이다. 에어백이 특정 부위에서 터지는 게 아니라, 실내 전체가 거대한 에어캡이 되어 탑승자를 고치처럼 감싸 안는 방식이다. 옷에 좀 묻으면 어떤가? 내장 파열을 막고 목숨을 건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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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2: 외부 보호막 (External Defense) - "차가 먼저 막아낸다"


스마트폰에 범퍼 케이스를 씌우듯, 차 밖에 에어백을 다는 것이다. 센서가 충돌을 감지하면 차체 외부에서 거대한 에어백이 튀어나와 충격을 흡수한다. 이는 탑승자뿐만 아니라 보행자까지 보호하는 '이타적인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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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3: 물성 변화 (Soft Material) - "마시멜로 자동차"


자동차는 꼭 딱딱한 강철이어야 할까? 평소에는 형태를 유지하다가 충돌 시에는 고무공처럼 팅~ 하고 튕겨 나가는 신소재로 차를 만들면 어떨까? 찌그러지는 대신 탄성으로 충격을 튕겨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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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4: 구조적 분리 (Structural Separation) - "도마뱀 작전"


전기차 플랫폼 위에 사람이 타는 캐빈(Cabin)을 얹는 구조를 활용한다. 충돌 직전, 무거운 배터리 플랫폼은 바닥에 스파이크를 박아 제동 하고, 사람이 탄 캐빈은 분리되어 충격 에너지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되는 것이다. 마치 전투기의 비상 탈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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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마치며) 다시,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얼마 전,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빙판길 위에서 제동력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지는 차들, 잇따른 연쇄 추돌 사고 소식을 뉴스로 접하며 나는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최첨단 자율주행 기술을 논하는 시대라지만, 눈길 위에서 쇳덩어리 자동차는 여전히 거대하고 위험한 흉기일 뿐이었다.


"차가 좀 더 말랑말랑했더라면, 아니면 충돌 직전에 에어백이 밖에서 터져줬더라면..."


뉴스를 보던 나는 자연스럽게 5년 전, PC 깊숙한 폴더 속에 묻어두었던 <Project Egg Drop> 기획안을 다시 떠올렸다. 당시엔 "시기상조"라는 벽에 부딪혀 멈췄지만, 기술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른다. 강산이 반쯤 변한다는 5년이 지났다.


과연 지금은 어떨까? 혹시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이 엉뚱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혁신가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나는 다시 리서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서 우리가 꿈꾸던 안전한 미래의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2부 - 강철 갑옷을 벗고 돌아온, 2035년의 '꼬마자동차 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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