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 Nov 30. 2023

1. 어서 와, 소음 지옥은 처음이지?

현재 진행형인 나의 소음 지옥.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심장이 발치에 떨어질 때마다 '이것도 소재로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살만 하지 않을까 싶어,


살려고 시작하는 소음 일지.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윗집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드릴 소리로 추정되었다. 지금까지 몇 달 동안 간간히 인테리어 공사를 하나보다 싶은 소음이 간헐적으로 들렸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몇 시간을 이어지는 공사 소리와, 천장과 벽을 타고 내려오는 진동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목을 타고 '제발 그만하라고!'라는 비명 같은 끔찍한 소리가 나왔다.




<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아침 9시가 좀 지나서였을까. 윗집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공사를 담당하시는 작업자 같았다. 종일 바닥 공사 때문에 드릴 소리가 날 예정이라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나 싶어서 떨떠름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한 여성분이 현관 벨을 눌렀다. 윗집이라고 했다. 바닥 인테리어 공사를 다음 주까지 할 예정이며, 미리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아이가 있는데, 매트 공사는 할 거지만 애가 급발진하는 때가 있다고.


일단 시작한 공사는 어쩔 수 없으니 알겠다고 했다. 내가 하루 종일 집에서 일하는 근무 형태라는 점도 알렸고. 서로 어느 정도 감안하고 배려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답하고 돌려보냈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 최대한 친절하게 대응하려고 했는데, 겪은 게 있어서 이미 마음이 곱지 않아 너무 친절하게 대응한 건 아닌가 후회됐다. 얕잡아 보였으면 어쩌지.


드릴 소리가 엄청났다. 몇 시간을 듣고 있으려니 정신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드릴에 망치 소리까지. 다음 주에 큰 마감이 하나 있는데, 하필 이렇게 기간이 겹치다니. 이 소리를 어떻게 다음 주까지 듣고 살지. 큰일이다.




10월 중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는 건 이 이틀이 전부다. 그다음은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드릴의 드르르륵 소리, 망치의 쾅쾅쾅 소리, 작업자 분들이 뒤꿈치로 바닥을 찍고 다니는 쿵쿵쿵 소리, 무거운 물건을 끄는 듯한 그르르륵 소리의 연속. 정말 쉴 새 없이 내리 3주 동안을 들었다.


귀가 먹먹해졌고, 소위 '귀가 트였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평생 위층이 없는 집에서 산 적이 없고, 위층에서 나는 온갖 생활 소음을 들으면서도 지금까지 나는 층간 소음으로 인해 고통받은 적이 없다.


아, 조금 힘들었던 적은 있다. 이전 집에 살았을 때. 작은 빌라였던 이전 집은 신축임에도 소음 대비가 정말 안 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마 건물 자체가 너무 작아서였을 거다. 1년 넘게 공실로 있던 앞집에 어느 가을 들어온 커플은 새벽만 되면 서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대화했다. 싸우는 건지 대화하는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렇게 서로 죽일 듯이 소리를 지르다가도 한 10분쯤 뒤에 같이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걸 보면 (그리고 새벽 내내 그랬던 걸 보면) 그냥 둘의 대화 스타일이 그랬던 것 같다. 특히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는데, 처음에는 폭력 사태 같은 게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결국은 그게 그 둘의 일상의 일부였던 거다.


하지만 이 건물은 방음이 잘 안 된다. 오죽하면 자정 넘어 고요한 시각, 위층 총각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소리나 주방에서 칼질하는 소리가 생중계될 정도였으니까. 이 커플의 목청은 우리 집 현관을 가볍게 뚫고 들어왔고, 더 큰 문제는 그 시간대가 늘 새벽이었다는 거다.


몇 주를 참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저 둘은 그들의 대화가 밖에 들린다는 걸 모를 수도 있겠구나?' 보통 집 안에서 나누는 대화가 집 밖까지 들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니까. 그래서 둘이 또 싸우던 어느 새벽, 윗집에도 들릴 듯하여 미안했지만 한 번쯤은 알려줘야 할 것 같아 현관 앞에 서서(집 안에서) 앞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다 들린다고! 적당히 해!!! 그만 싸워!!!!!' 순간 조용해졌다. 당황스러웠을 거다. 앞집에서 지르는 소리가 자기 집 안에서도 들린다는 게.


이후에도 그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지만, 이전 같은 소음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가끔 술을 마시고 제어가 안 되면 예전처럼 비명을 지르고 울며 싸우기는 했지만, 매일 그러지는 않았다. 내가 원한 건 둘이 싸움을 멈추는 그런 박애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내가 잠을 잘 수 있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걸로 나는 만족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나는 왜 지옥에 쳐 넣어진 걸까. 지금껏 나태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벌인가. 지금껏 평생의 운을 끌어 쓴 탓에 남은 불운이 시작되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